김신열 여사가 해준 홍합밥의 추억 "그립습니다"
독도에 들어가 살겠다는 민간인 신청자 많아
경비대장, 통신반장, 등대소장도 사람 그리워
"파기름장을 한 숟가락 퍼넣어 비벼라"
낮에 따온 홍합으로 저녁에 홍합밥을 지었다. 아이들 손바닥만 한 홍합을 반으로 잘라 솥에 넣고, 참기름을 넉넉하게 둘러 볶았다. 구수한 김이 술술 오르자 불린 쌀을 넣고 밥을 안쳤다. 데친 대황(해조류의 일종)을 꽁치젓갈에 버무려 내고, 김성도 이장님, 김신열 여사와 셋이서 홍합밥을 양푼이에 퍼담아 앉은뱅이 상에 둘러앉았다. 시키는 대로 파를 넣은 참기름장에 비벼서 한 숟가락 떴다. 맛의 신천지였다. 한 양푼이 다 비우고, 체면 차릴 것도 없이, 남은 밥마저 퍼담아 해치웠다.
2008년 9월 3일, 울릉읍에서 2098번째로 본적지를 독도로 옮기고 독도상주기자로 들어간 날 저녁, 김신열 여사는 홍합밥을 지어줬다. 독도 주민으로서 배려였고, 환영이었다. 그 당시에도 독도 홍합밥은 귀한 음식이었다.
김신열 여사가 물질 나가 홍합을 따면, 김성도 이장님이 모터보트를 몰고 나가 받아온다. 오후에는 둘러앉아 그것을 까서, 비닐봉지에 나눠 담는다. 관광선 편으로 울릉도로 보내면 홍합 한 알에 5백 원 꼴이 된다. 홍합은 독도 김 이장댁 주소득원이다 보니,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17년 전 홍합밥을 지어줬던 김신열 여사가 지난 3월 2일 별세했다. 2018년 김성도 이장이 타계한 후 뭍으로 나와 생활하다가, 노환으로 천명을 다한 것이다. 김성도, 김신열 부부는 1991년 독도로 주민등록지를 이전하고, 2006년 2월부터 독도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1965년 최종덕 씨가 처음 서도에 슬레이트 블록집을 짓고 거주한 이후, 1986년에 들어간 조준기·최경숙 부부에 이어서, 세 번째 주민이 된 것이다. 독도에서 생활한 주민들은 그동안 '우리 땅 독도' 지키기에 큰 축이 되었다.
2008년부터 1년 동안 독도상주기자로 생활하는 동안, 독도에는 마을이 있었고, 이웃이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독도에는 경비대원, 등대원, 독도관리사무원, 119구급대원뿐이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이다. 독도를 생활 근거지로 하여, 바다가 내주는 산물을 젖줄로 하여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 없는 동네에서 관리자들끼리 서로 관리하고 있다.
독도를 하루라도 비워둘 수는 없다. 지금 독도에 들어가서 살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도를 관리하는 행정관서는 지난날과 같이 독도에 민간인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기반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 빨리 독도 입주민 선정기준을 만들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 독도에 들어가서 생활할 주민을 정해야 한다. 독도는 대한민국 사람, 민간인이 들어가서 홍합을 따고, '독도카페'도 운영해야 된다.
그 옛날, 독도경비대원들이 50일 간 독도 근무를 마치고, 울릉도 본대로 복귀하는 전날. 김신열 여사는 언제나 간부와 고참병들을 서도로 불러다 홍합밥을 지어 먹여 보냈다. 다음날 독도를 떠나는 경비대원들은 독도 사람들 인정에 눈시울을 붉혔다. 나중에 육지 나가서도 안부 전화를 하면 늘 독도 홍합밥이 생각난다고 했다.
독도상주기자 시절 함께 생활했던 강석경 경비대장, 추호 통신반장, 그리고 엄태명 등대소장님. 우리가 어민숙소에서 홍합밥 비벼 먹던 그때가 '독도리'다웠지 않습니까.
전충진(전 매일신문 독도상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