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의 철학이야기]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입력 2025-08-28 11:58:23 수정 2025-08-28 17:43:00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세상이 바삐 돌아가는 듯하나 TV 뉴스는 잘 보지 않는다. 대개 그 내용이 사실이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더러 유튜브를 보지만 특정 정파로 갈라져 무조건 상대를 비난하는 논조가 대부분이다. 심심풀이로 듣는 무속인들의 정치적 예언 또한 잘 들어맞지도 않는다.

한 일본 만화가의 지난 7월 5일 '난카이 대지진' 예언에 겁먹어 일본 여행을 포기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후쿠시마 방류 오염수가 방사성 물질 범벅이라 3개월 뒤 우리 바다를 초토화한다는 괴담으로 전국의 횟집이 큰 불황을 겪기도 했다. 그뿐인가. '뇌송송 구멍탁'이라며 떠들던 2008년 광우병 사태는 어땠는가. 말을 꺼내려니, 한둘이 아니다. 이때마다 대중매체는 특정 이념이나 정치권력에 휘둘려 사실을 객관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가짜, 사기, 날조, 조작의 선전과 선동을 경험한다. 여론도 통계도 전문가 의견도, 인터넷도, 대중매체도 모두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이미지 합성(딥 페이크)같이 의도적인 변조, 주작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가짜와 거짓에 말려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보통 우리는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맞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기억한 것도 '틀린' 것일 때가 많다. 한편 남들로부터 전해 듣는 소식과 정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가능한 한 자신이 직접 확인, 검증해 보아야 마땅하다. 어쩌랴. 바쁜 세상에 일일이 따져볼 시간도 능력도 없고, 그저 남들을 믿으며 그러려니 사는 게 현실 아닌가.

그러나 남의 증언을 믿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먼저, 그것이 억지로 꾸며대는 거짓말이 아닌지 진실성 여부를 살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사람이 해당 사안을 잘 알 수 있는 능력자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하늘을 나는 용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치자. 이럴 경우, 그가 지금까지 행해왔던 일상적 언행, 용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식견의 여부, 증언할 때의 태도, 몸짓, 표정 등을 종합해 보아야 한다.

흔히 TV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본다. 물론 전문가에도 수준이 있고, 그중에는 어용도, 사이비도 있다. 가짜 뉴스가 남발될 때도 비판은 커녕 오로지 한편만을 편들거나 지지한다면 그가 과연 전문가일까.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거짓말인 여느 정치인들처럼, 이들은 언제 어디서 자신이 한 증언을 바꿀지 알 수 없다.

일상에서 우리가 특정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이른바 '전문가 사기꾼(깡패)'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첫째, 전문가가 어떤 결론을 도출할 때 그들이 근거하고 있는 전제를 비전문가가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지구온난화의 원인에 대해 논의한다 치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기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이해하고, 그것을 조사・분석하기 위한 이론 등의 많은 전제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전제가 되는 이론적 지식을 비전문가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둘째, 전문가의 논증(논리적 증명)을 들어도 전제와 결론 사이의 지지 관계를 비전문가는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데이터가 지구온난화 가설을 지지하는지 어떤지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 증거가 되는지 안 되는지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증거 채택의 이유와 내막을 잘 판단할 수 없다.

셋째, 전문가의 논증에 대한 반증(증거에 대한 반론)에 비전문가들은 친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결론을 도출했을 경우, 그 논증에 대해서 어떻게 반증 가능한지, 그 반증에 대한 또 다른 반증은 어떻게 얼마나 가능한지 등등, 비전문가는 잘 모른다.

이렇게 보면 가령 전문가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는 것을 들었다 쳐도,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며, 왜 그 데이터에서 그런 주장이 도출되는지, 비전문가는 잘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전문가의 증언이 갖는 일반적인 난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난점을 극복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전문가의 주장을 믿지 못한단 말이 된다. 한 가지 대안은 다른 전문가들이 직접 나서서 그 증언을 차분히 따져보는 것이다. 아울러 비전문가일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점검해보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해당 전문가가 지금까지 행해왔던 발언이나 행적을 살펴보는 것, 그리고 많은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보거나 어떤 주장에 대해 제기된 다양한 반론을 꼼꼼히 챙겨보는 것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듯 낭만 가득한 청정한 곳이 아니다. 탐(탐욕)・진(분노)・치(무지)에 찌들고, 수시로 아수라로 변하는 얄궂고 더러운 곳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 거짓 소문, 가짜 뉴스, 사기성 발언, 권력의 음모적 선전 선동이 횡행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둡고 힘든 시대일수록 각자의 양심에 기대고, 무언가에 대한 과잉 기대를 버리고, 차라리 열린 마음들과 더 따뜻이 연대하며, 동의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다른 선택지를 제안하면서, 믿지 못할 것들에 대해 믿음을 만들어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