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울릉 해수풀장 익사사고, 안전불감증이 부른 人災

입력 2025-08-21 16:57:52 수정 2025-08-21 20:34:29

시공부터 관리까지 안전불감증 도미노처럼 이어지며 사고 불러
해수풀장 공사업체, 공무원 등 사고 책임자 7명 벌금형 또는 금고형 선고

2023년 8월 1일 오전 울릉군 북면 해수풀장에서 초등학생 1명이 취수구에 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119구조대원들이 구조하고 있다. 포항남부소방서 제공.
2023년 8월 1일 오전 울릉군 북면 해수풀장에서 초등학생 1명이 취수구에 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119구조대원들이 구조하고 있다. 포항남부소방서 제공.

법원은 2년 전 경북 울릉에서 발생한 초등생 해수풀장 익사 사고(매일신문 2023년 8월 2일 등 보도)는 공사업체, 공무원 등 각 분야 담당자들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人災)라고 판단했다.

◆해수풀장 시공업체·관리감독 공무원 등 무더기 벌금 또는 금고형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2단독 박광선 판사는 20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해수풀장 시공 건설사 및 하도급 업체 대표 등 2명과 현장소장 1명 등 3명에게 벌금 1천만~1천5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로 이번 재판에 기소된 울릉군청 해양수산과 해수풀장 공사·관리 담당 공무원 4명은 이들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해수풀장 설치공사 실무책임 공무원과 해수풀장 운영 및 관리 실무담당 공무원 2명은 각각 벌금 1천만원, 해당 업무 일체를 총괄한 공무원에게는 벌금 1천500만원이 선고됐다.

특히 해수풀장 설치공사 공사감독관이자 초등생 익사사고 발생 당시 해수풀장 운영 및 관리 실무책임자였던 공무원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졌다. 추후 형이 확정되면 이 공무원은 파면될 수 있다.

초등생 해수풀장 익사사고는 2023년 8월 1일 오전 11시 5분쯤 울릉군 북면 군청이 관리하는 해수풀장에서 발생했다. 당시 12세 A군이 해수풀장 중앙에 위치한 물놀이시설 놀이대 아래 지름 13㎝ 취수구에 손이 빨려 들어가면서 몸과 얼굴이 물에 잠겼다. 주변에 있던 성인들과 119구조대원들까지 붙어 A군을 구하려 했으나 취수구의 압력 탓에 손이 빠지지 않았다. A군은 심정지 상태로 울릉군 보건의료원으로 이송돼 결국 사망판정을 받았다. A군이 빠진 물의 깊이는 성인 무릎 높이 정도인 약 40㎝였다.

초등학생 익사사고가 발생한 울릉군 북면 해수풀장 모습.
초등학생 익사사고가 발생한 울릉군 북면 해수풀장 모습.

◆시공부터 관리까지 총체적 부실

이 해수풀장은 울릉군이 2014년 정부의 도서 종합개발사업 예산을 받아 만들었다. 경쟁입찰로 선정된 시공업체는 약 6억원을 들여 2015년 12월 해수풀장을 완공하고 군청 담당 공무원은 이를 준공 승인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해수풀장의 사고 위험은 준공 때부터 잠재돼 있었다. 당시 시공업체는 본래 설계와 다르게 놀이시설 취수구에 플로어 드레인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 이 장치에는 이물질을 걸러내는 그물망이 설치돼 있는데, 손 등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도 한다.

취수구는 물을 빨아들여 물놀이시설 상부로 퍼올리는 펌프와 연결돼 있다. 펌프는 높이 18m까지 물을 뿜어낼 수 있을 정도로 압력이 강해 플로어 드레인 장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럼에도 업체는 이 장치 대신 임시 석쇠용 철망을 부실하게 덧대 용접했다.

군은 이 장치가 없는데도 준공을 승인하고 이듬해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다행히 2016년부터 2022년까지는 사고 없이 잘 넘어갔다. 2016년에는 적어도 물놀이시설 아래 배관설비 폐쇄시설 안전문이 잠겨 있어서 사람들의 취수구 등 접근이 불가능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임시폐쇄됐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자 울릉군은 2023년 6월 해수풀장 운영 재개 계획을 세우고 한 달간 시설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보수공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군은 폐쇄시설 안전문의 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행정안전부의 안전관리지침에 따르지 않고 구체적인 지도·감독 없이 같은 해 7월 1일부터 해수풀장 운영을 시작했다.

해수풀장 운영 중에도 안전관리 규정은 무시됐다. 군은 현장 안전요원 2명을 두고 위험 상황에 대비해야 했지만 무자격 아르바이트생만을 고용해 급·배수펌프시설 작동, 시설 청소 등을 맡겼다. 이들은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현장에도 없었다.

사고 당시 물의 깊이도 행안부 지침대로라면 30㎝를 넘기면 안 됐으나 이것도 10㎝ 초과하는 등 지켜지지 않았다.

◆법원 "시공업체보다 공무원 책임이 더 크다"

법원은 플로어 드레인 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시공업체보다 준공 이후 관리를 부실하게 한 공직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시했다.

박광선 판사는 "물이용 놀이시설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상식적으로 취해야 하는 조치였고, 군청 안전도시과에서도 사망사고 1~2개월 전에 공문을 통해 취·배수구 접근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이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은 울릉군 소속 공무원들의 유지·관리상의 주의 의무 위반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판사는 판결에서 공무원 개인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2015년 12월 행정부처의 물이용 놀이시설 기준이 규정돼 이전에 만들어진 시설은 정기시설검사 등을 받지 않는 규율상의 공백이 존재해 안전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며 "또 울릉의 경우는 안전조치를 이행하는데 필요한 인력·예산 부족의 문제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현실적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담당자가 누가 되더라도 또 다른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도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숨진 초등생 유족 측은 이번 판결의 양형이 부족하다며 항소 의견을 검찰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