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자산운용사 대리들은 어디 갔을까 [가스인라이팅]

입력 2025-08-20 18:16:48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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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텔레그램을 열면 온갖 주식 관련 텔레그램 채널로 가득하다. 일부는 증권사 공식 계정이고 대부분은 익명 투자자가 자기가 공부한 내용과 투자 의견을 올리는 개인 채널이다. 코로나 이후 유튜브의 생활화, 개인 투자자 급증과 맞물려 이런 텔레그램 채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구독자가 1만명 이상 되는 채널도 수두룩하다. 채널 운영자의 성과를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채널에 올라오는 글은 업자인 내 입장에서도 상당히 심도 있고 통찰력 있다.

그 중 한 채널 운영자가 얼마 전 공지를 하나 했다. "곧 군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라는 공지였다. 그때까지 채널 운영자의 나이를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40대 자산운용사 팀장인 내가 자주 보던 주식 관련 채널을 20대가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 좀 충격적이었다.

뭐하던 친구일까 궁금해하다가 별로 궁금해지지 않게 됐다. 내 옆에서 일했던 누군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최근 자산운용사는 대리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몇 년 일하다가 개인투자 한다고 퇴사한 직원이 많아져서다. 떠나는 이를 가리켜 누구는 "경솔하다"고 하고 누구는 "충성심이 없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그렇게 평가한들 퇴직 러시는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고 승진하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는 왜 끝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재산소득 성장 속도가 근로소득을 훌쩍 상회해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부터 2023년까지 가구소득을 세분화해 보면 근로소득은 연평균 4.1% 성장했는데 재산소득은 연평균 6.8% 늘었다. 회사원으로 벌 수 있는 돈 보다 쌓아 놓은 재산을 굴리는 게 더 짭짤하다는 말이다.

현실에서 진행 중인 '글로벌 탈세계화' 탓에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기업의 미래는 나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수요를 무기로 미국 생산을 강요하고 있고 그 뒤를 유럽도 따라가는 모양새다. 중국 시장은 이미 중국 기업이 독차지했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는 정책을 쉴 새 없이 내놓고 한국 기업은 자연스레 국내 투자를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에 다니며 근로소득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게다가 직장인에게 소득은 체감상 계속 줄어드는 느낌이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 간 대기업 평균 연봉은 약 70% 상승했는데 과세표준에 큰 변화가 없어서다. 과세표준은 현재 5천만원까지는 15%, 5천1만원~8천800만원까지 24%, 8천801만원부터 1억5천만원까지 35%다. 금융권 대기업 직원들 연봉이 대부분이 24%에서 35%로 11%p나 급격하게 오르는 구간에 대부분 껴있다 보니 연봉이 올라도 상승분은 체감되지 않는다. 계속 오르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도 한 몫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이런 현실을 빨리 받아들였는지 "이제 근로소득만으로는 내가 꿈꾸는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예전엔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자를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자영업자 가구소득을 보면 이제 그 길도 막혔다. 자영업자 사업소득이 연평균 1.5% 성장할 동안 그들의 재산소득은 연평균 6.0% 성장했다. 젊은 친구들에겐 갈 곳이 없어 보인다.

혹시 우리 사회가 그들을 '투자의 세계'로 등 떠미는 건 아닐까. 지난 주에도 우리 회사 대리 하나가 개인투자를 하겠다고 퇴사를 했다. 건투를 빈다.

최재리 자산운용사 팀장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