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천년 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는 단순한 경제협력 논의를 넘어, 한국 외교의 방향과 이재명 정부의 국제 무대 리더십을 가늠할 시험대다. 2005년 부산 회의 이후 20년 만의 국내 개최이며, 주요 강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국제 외교의 정점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과 외교적 무게감은 크다.
이번 회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익 중심'의 국제질서 재편이라는 대전환기에 열린다는 측면에서 더욱 주목된다. 결과에 따라 전 세계 경제와 외교안보 지형에 영향을 미칠 대형 이벤트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을 넘어서 실용과 원칙이 조화를 이루는 새 외교 노선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한·미 관계는 군사동맹을 넘어 경제 안보 협력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 상호 관세 협상과 양국 정상 회담을 통해 외교 현안들에 대한 조율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하지만, 핵심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국과의 관계도 공급망과 반도체, AI 등 핵심 기술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경제협력을 지속하면서 안보와 가치 연대 측면에서는 원칙을 견지하는 '선명한 다자외교'가 요구된다.
북핵 문제와 북·러 밀착,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남북 관계의 독자적 해법 마련 또한 경주 APEC의 이면에서 다뤄야 할 주요 논제다. 이 문제가 공식 의제로 다뤄지지는 않더라도, 양자 또는 다자 간 회담을 통해 한반도 안정을 위한 외교적 공감대를 확산시킬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고 했다. 이번 회의의 성공을 위해서는 회담의 의제와 성과 뿐 아니라, 철저한 행사 준비와 품격 있는 운영이 핵심이다. 2023년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잼버리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역할 분담과 협력 부재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전례를 잊어선 안 된다. 쾌적한 환경과 교통, 숙박, 시민과의 소통과 같은 부수적인 요인들이 외교의 품격과 직결된다.
특히 세계 주요 정상들이 대거 참석하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의전과 경호·안전 대책이 필수적이다. 국제 테러단체의 위협이나 사이버 공격도 중대한 요소이며, 이해관계가 첨예한 미국·일본 및 중국 정상이 동시 방문하는데 따른 정치적 긴장도 고려해야 한다. 사소한 사고나 실수 하나가 회의의 의제를 덮을 수 있음을 고려할 때, 경호·안전·의전은 행사 성공의 생명선이다.
역대 APEC 중 회담의 의제 뿐 아니라 준비 과정과 운영의 완성도로 주목을 받았던 1993년 시애틀, 2001년 상하이, 2017년 다낭 회의 같은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2005년 부산 회의도 흠결 없는 의전과 의사결정, 높은 개최 완성도로 '글로벌 협력 국가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때 논의된 'APEC 통합 이니셔티브', 'FTAAP(아·태 자유무역지대)' 등의 구상은 후속 회의로 이어져 실질적 성과로 나타났다.
세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견국 외교의 모범을 보이며, 합의 주도와 합리적 조율 능력을 입증했던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과도 소중한 자산이다. 치밀한 준비, 치안 확보, 숙박·교통 관리, 그리고 한국형 의제 설정 능력이 세계를 감동케 했다. 철저한 준비와 전략적 메시지가 결합할 때만이 성과를 기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APEC 역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이며, 그 성공 여하에 따라 국가의 위상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만큼 단순한 국제행사 유치나 지역경제 활성화를 넘어 88서울올림픽이나 2002월드컵처럼 우리의 잠재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남은 관건은 이재명 정부의 역량에 달려있다. 자칫 예산 타령을 하거나 정부 교체 과정에서 준비 지연을 탓할 겨를이 없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합의제 형태의 준비위원회와 대통령실 태스크포스 만으로는 책임 소재에 한계가 있으므로, 외교부·경상북도·경주시 준비단과 경호안전통제단 등을 총괄 지휘할 수 있는 실무 주체를 지금이라도 공개 지명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일사불란한 준비와 '원 보이스'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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