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의 메소드 연기로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대부'의 미장센은 '복수(復讐)'를 치장하기 위해 구성됐다. 박찬욱이란 이름을 세계 영화계에 각인시킨 '올드보이' 역시 스토리텔링의 기저엔 복수가 깔려 있다. 문학작품도 마찬가지다.
'햄릿', '모비 딕', '몬테크리스토 백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등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를 땔감으로 쓰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복수의 아궁이는 대부분 사회나 타인을 향해 있다. 그러한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것은 어쩌면 인간 내면에 그러한 성향이 잠복해 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복수를 말하면서 소진(蘇秦)을 빼놓을 수 없다. 때는 전국(戰國) 시대. 주나라, 진나라, 조나라에서 박대를 받은 소진은 연나라 군주를 설득한 끝에 진(秦)에 대항하기 위해 초, 한, 연, 제, 위, 조를 묶는 이른바 합종동맹을 성사시킨다. 그 덕분에 그는 무려 6개국의 재상이 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소진은 득의만면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왜 생겼겠는가. 그를 시기하는 제 나라의 대부가 그를 해칠 음모를 꾸민다. 정승의 거처는 경계가 삼엄했지만 내통하는 이가 있으니 별무소용이다. 결국 소진은 자객의 칼에 찔린다.
소진은 숨이 끊어지기 전 왕에게 범인을 잡을 계책을 전한다. 그것은 인지(人智)의 극한을 넘어서는, 그야말로 순연한 복수심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자객을 조종한 자는 필시 내부 인물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적국과 내통한 자라고 소문을 낸 뒤 자신의 목을 베어 성문에 내걸고 자객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다는 포고문을 붙이라고 이른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배후를 소탕할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왕은 소진의 말을 충실히 이행했고 결과는 소진이 예측한 대로 됐다.
현실은 어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거대담론은 꺼내지 말자. 우리 사회의 범죄사건은 복수심에 바탕한 경우가 적지 않다. 평범한 일상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다. 회의 석상에서 번번이 딴전을 피우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직원에게 충고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뒤 그 직원이 지인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더라는 것.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은 그토록 긴 세월에도 화석이 되기를 거부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복수하고 있다. 복수하고 복수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 헛되이 보낸 젊은 시절의 나에게, 여전히 나태하고 교만에 찌든 나를 날카롭게 벼린 칼로 찌르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복수가 끝날 때까지 쓰고 또 쓰는 수밖에. 내가 나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 줄 진즉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댓글 많은 뉴스
尹, '부정선거 의혹' 제기 모스 탄 만남 불발… 특검 "접견금지"
윤희숙 혁신위원장 "나경원·윤상현·장동혁·송언석 거취 밝혀야"
관세 폭탄에 노동계 하투까지…'내우외환' 벼랑 끝 한국 경제
정청래 "강선우는 따뜻한 엄마, 곧 장관님 힘내시라" 응원 메시지
정동영 "북한은 우리의 '주적' 아닌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