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김수용] 구조개혁 없이는 잠재성장률 3% 회복 어렵다

입력 2025-06-30 20:11:36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숫자로 드러나는 경제 동향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와는 사뭇 동떨어진 느낌이 있다. 물가상승률이나 실업률 등이 그렇다. 하지만 경제지표(經濟指標)가 장바구니 경제와 늘 딴판인 것은 아니다. 현실이 지표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따름이다. 그런데 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조금 양상이 다르다.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도 나라는 고속 성장할 수 있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정도만 아니라면 경제성장률이 주춤해도 서민들 생활은 별 어려움 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내수 부진과 자영업자 줄폐업, 제조업·건설업 위기가 하루가 멀게 뉴스에 등장하면서 장기 저성장 시대가 도래했다는 암울한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외 기관들은 앞다퉈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급기야 0%대 전망까지 나왔다. '나라 망하겠다'는 푸념이 술자리 안주로 등장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와중에 미국발 관세 장벽, 세계 곳곳에서 발발한 전쟁까지 악재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 기대 심리와 함께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도 차츰 해소되는 분위기다. 외국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높이고 있다.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나 미·중 무역 갈등 완화 등에 따른 기대감이다. 중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대중국 수출 증가 전망과 2차 추경에 따른 경기 부양 효과 등도 반영했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된 것은 아니다. 올해 0%대 성장률 전망도 지배적이다. 한 나라의 경제 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은 내년에 충격적인 1%대로 떨어진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외환위기가 벌어진 1997년 6.74%이던 잠재성장률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2018년부터 2%대로 떨어졌다. 이재명 정부가 잠재성장률 3% 달성을 목표로 '성장 기조(成長基調)'의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은 더 이상 성장률 하락을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경제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며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국정 기조를 천명(闡明)하면서 "검불을 걷어 내야 씨를 뿌릴 수 있다"며 구조개혁의 고통을 감내(堪耐)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여기에 핵심이 담겨 있다. 자본시장 개혁을 통한 코스피 지수 5,000 시대, 인공지능·반도체·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로 성장동력 회복을 꾀하겠지만 구조개혁이 없이는 잠재성장률 3% 회복도 불가능하다. 추경을 통한 유동성 공급도 저출생, 고령화, 신성장 동력 부재라는 해묵은 숙제를 풀지 않고는 그저 임시방편(臨時方便)에 지나지 않는다.

잠재성장률 3%가 무너졌던 2017년은 고령인구가 유소년인구를 앞지른, 즉 생산연령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든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은 '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 볼 교훈'이란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일본의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노후화한 경제 구조를 혁신·창조적 파괴해야 경제가 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새판을 짜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시장 변화, 규제 철폐, 노사 관계 재정립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변화가 극심할수록 저항은 거세진다. 여당은 지지율 하락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은 나라를 망치게 한다. 잃어버린 30년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고통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