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유영봉 연출의 극단 서울괴담 <보이지 않는 도시> (작·연출: 유영봉 /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 6.23~29,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은 전작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에서 보여준 장소특정형 퍼포먼스의 연장선에 있다. 연출은 사라져가는 성북동 도심의 골목과 마을 사람들의 땀 냄새가 진하게 배인 삶들이 사라져가는 기이한 마을을 탈 연극화한 방식으로 제시하며, 대표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도 오브제와 소품으로 사용된 탈(인형), 인형극, 그림자극, 장고와 피리 연주는 한국 전통의 골목과 가옥이 사라지는 풍경을 재개발로 병들어 가는 한국 사회의 기이한 현상과 병치시키며, 낯섦의 판타지와 풍자, 때로는 현실적인 전경과 인물들을 실제 공간, 마을 골목, 특정 장소에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마치 50년 후 근미래의 성북동 골목을 전래동화-판타지-다큐멘터리로 읽어나가는 듯한 인상을 주며, 성북동 골목 일대를 괴기하면서도 낯섦의 환상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작품은 탈연극적 실험임과 동시에 강렬한 드라마를 내포한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은 유영봉 연출만의 연극적 형식이 언어로 각인된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대화
유영봉 연출의 작품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인형극적인 탈과 가면의 활용이며, 전통 악기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연출적 오브제들의 집합체는 우리 가면극 특유의 풍자와 해학, 사회비판적인 태도를 유연하게 유지하면서도 극적인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객관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인간의 얼굴을 물화한 '탈'은 익명성을 획득함으로써 인간의 특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불특정 대상의 인간을 포괄하는 캐릭터로 기능하며, 동시에 현실의 특정 인물로 제한하지 않는 탈의 특성과 이를 묘사하는 생활 연기의 교차는 극의 분위기를 이질적이고 낯선 층위로 전환한다. 이로 인해 무대와 공간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현실적이며, 현실적이면서도 익명의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강렬한 판타지성을 생산해 내는 독특한 미장센으로 시각적 형상화가 된다.
그의 작품은 전통 가면극인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처럼 인간과 욕망을 희화화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풍자를 드러내고,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우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비판을 병합하는 유영봉 연출의 미학적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는 극장의 밀폐된 구조를 이탈하여 극적 환상을 탈연극적인 구성과 리듬으로 해체하기도 하고, 전통 가면극처럼 관객과의 직접적인 대화와 참여를 유도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자유롭게 이동시켜 극적 환상을 해체하고 직접적 참여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특징이다. 텍스트 역시 완결된 서사 구조를 이루기보다는, 백정, 할미, 선비, 파장 전통극 마당처럼 에피소드화 된 구성을 따르며 지문 형식도 언어보다는 몸과 배우의 감각적 행위로 묘사될 수 있도록 한다.

◇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대한 가면극의 풍자에서 애도까지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서 재공연된<보이지 않는 도시>는 초연부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까지 다양한 공연 버전이 존재한다. 작품은 가면의 그로테스크함과 극 중 인물의 인상을 인형화(탈화)하며, 등장인물을 인형적인 캐릭터로 부각하는 한편, 움직임과 제스처, 동작 등을 가면극처럼 과장하거나 반대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현실 속 인간 군상과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유영봉의 연극은 탈 극(가면극)과 현실 세계를 융합하여 동화적 환상성과 그로테스크함을 동시에 공존하는 무대로 형상화하며, 매직 연출기법과 우리 전통의 리듬들을 혼합하여 매우 독특한 장면 구성으로 드러나는 연출 특징이 집약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도시>는 발이 닿는 좁은 방, 두세 평 남짓한 가옥, 옥상 집, 그리고 허름한 성북동 달동네, 미아리고개 좌우에 늘어선 도심 골목 등의 공간을 배경으로, 뉴타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소멸되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할머니의 생존 이야기를 다룬다. 도시는 마치 괴담처럼 개발의 허상 속에 사라져 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사람, 기억, 공간을 이미지적으로 시각화한다. 특히 그의 연극에서 '침묵'과 '사이'로 발현되는 행간은 텍스트의 건축물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구성의 리듬들이다.
무대 공간에 형상화된 두세 평 남짓한 공간 구조 위로 쓰나미처럼 사라져가는 도심 골목의 낡은 구도심 건물 전경들이 미니어처 형태로 드러난다. 허름한 빈방에 배치된 미니어처(골목 주택 모형) 들은, AI 헬스케어와 스마트 AI 주차 시스템으로 무장한 '이편한세상 아파트' 같은 재건축 단지가 마지막 남은 동네 한 평의 땅조차도 삼킬 것 같은 욕망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공간의 중심은 재개발로 밀려나는 동네 한켠, 할머니의 두 평 남짓한 집을 지키는 장소다. 주변 벽면은 경고 테이프로 둘러싸여 있고, 무대 앞쪽은 장독대와 텃밭,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할머니의 삶이 소박하게 박혀있다. 등장인물은 할머니(오선아 분), 도시개발업자, 철거 용역, 건설노동자, 악사, 그리고 할머니 집을 지키는 도도(허진 분)로 구성되며, 이들 관계와 동선은 간소화된 무대 구성 속에서 집이 회전무대화 되면서 탈 극장적 공간 분위기를 형성하는 입체적인 전환도 보여준다.
플롯은 전통 가면극처럼 에피소드화되어 있고, 도시개발업자들의 욕망은 프롤로그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 후 할머니와 평생을 함께 살아온 듯한, 작고 왜소한 얼굴 형상의 검정털 도도(일본 애니메이션 토토로 외형을 생각하면 될듯하고 얼굴은 인간의 형상으로 괴기하다)가 등장한다. 도도는 반려묘처럼 희화화된 캐릭터로, 요구르트를 먹으며 소박한 집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기도. 이후 철거반들이 들이닥치며 할머니와 도도의 좌충우돌 대립이 벌어지고, 집이 철거되어 가는 과정은 장고 리듬을 통해 자본의 욕망화로 무력하게 파괴되어 가는 할머니의 생존의 상실이 장면화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철거된 할머니의 방 내부로 관객이 소환되고, 관객은 가족으로써 집 내부에서 할머니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위로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구조다.

◇'e-편한세상'의 욕망, 도도의 환상
플롯 구조는 개발–도시의 욕망, 소소한 일상–제로섬 전쟁, 기억의 실체로 이어지는 세 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에피소드 형식이다. 이는 구조상 단순하면서도, 연출적인 감각과 무대에서 발화되는 가면 캐릭터, 도도의 설정, 재개발 철거 현장의 장고 리듬성, 그리고 무언극에 가까울 정도로 언어(대사)를 최소화한 인물 간의 관계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비극성과 욕망의 구조를 가면극적인 제스처와 동작을 통해 형상화된다. 인물들은 매우 사실적인 형상으로도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사실적으로 형상화되지 않는 인물들은 도시개발업자, 할머니, 그리고 도도다.
이 중 도시개발업자를 제외하고 할머니와 도도는 거의 무언에 가깝고, 반면 철거 용역과 건설노동자들은 현실적인 인물 형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구성은 마치 동화적 환상성을 그로테스크하게 유도하는 장치이며, 한국적인 전경들로 이미지화된 무대와 결합하여 <보이지 않는 도시>는 한국의 전통적인 도심이 사라져가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무대로 작동한다. 할머니와 개발업자들이 착용한 가면의 비인칭성은 특정 인물로 형상화될 수 없는 익명의 얼굴로 치환되며, 그 자체로 수많은 개발업자의 들끓는 욕망과 철거의 폭력성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도도는, 도심의 보이지 않는 골목 끝, 방 한켠에 자리한 가옥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소시민과 그것을 가옥의 신(神)조차도 수호할 수 없는 상징적인 존재로 표상화된다.
배우의 인상을 연기로 표현화하는 것은, 매우 사실적인 서사와 인물 간의 관계, 그리고 현실을 전경화하는 허구적 서사 안에서 발현(發現)된다. 유영봉 연출은 철거노동자와 건설노동자의 인상을 극도로 사실화함으로써,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사라져가는, 보이지 않는 도시 개발의 폭력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노파와 건설노동자, 철거 용역자만을 가면으로 형상화한 것은 가면극 특유의 풍자성과 동화적 판타지를 연결함으로써,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전경 구조로 드러내 보인다. 재개발의 가해 구조는 폭력성으로 구현되고, 이에 맞서 '보이지 않는 도시'를 지켜내려는 할머니의 삶은 환상과 침묵의 장면들로 구조화되어 그 비극성이 그로테스크하게 전달되는 것이 유영봉 연출이 무대로 집약시키는 특징들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도도'이다. 도도는 인간의 얼굴 형태를 띠면서도 인간화되지 않은, 반인반수의 괴기한 형상으로 등장한다. 인형 같은 몸짓으로 움직이며 철거되는 집의 안과 밖을 유령처럼 떠도는 존재이다. 도도는 신화적이며 유령적인 존재, 즉 사라져 가는 집과 도시를 지키는 정령의 수호자로, 일종의 가택신(家宅神)과 같은 캐릭터 적 상징성을 가진다. 형체를 특정할 수 없는 도도는 일본의 신화적 신과 맞닿아 있는 형태에 가깝다.

◇무대 형상의 의미들
연출은 도도의 야쿠르트 장면, 한국 전통 골목 가옥의 구들장 속으로 숨어드는 형상들, 그리고 철거반들을 피해 할머니의 수호신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통해, 도도가 인간을 회피하고 가택신처럼 존재하는 분위기를 섬세하게 형태화했다. 이러한 설정은 이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사회적 표층을 은유화하는 연출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유영봉 연출이 지속해서 시도해 온 가면극(가면)과 인형(탈) 캐릭터의 활용은 이 작품에서도 사실화된 극 중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욱 구체화한다. 도도의 움직임, 표정, 감정 등은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한 인간처럼 감각된다.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 철거반들의 가옥 해체 과정과 할머니와의 좌충우돌 장면은 장고 리듬을 통해 움직임과 되어 표현되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은 한국 사회 전통 골목과 가옥들이 철거되는 과정을 우리 전통 악기의 리듬으로 형상화한 시도로 이해될 수 있으며, 휘몰아치는 장고의 리듬은 철거 현장의 긴장감과 파괴적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하지만 이 장면이 '보이지 않는 도시'를 드러내려는 의도에 적절하게 부합했는지는 의문이다. 맥락적으로는 효과적인 장치였을 수 있으나 극적 효과가 극대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 장면은 가옥이 철거된 후 할머니의 방이 홀로 남아 죽음으로 전환되는 극 중 장면이다. 공간은 마치 무덤처럼 변주하며, 수백 년간 한국 사회의 골목 지붕을 떠받쳐 온 대들보는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가는 죽음의 도시로 형상화된다.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 사라져가는 도시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내면은, 이 장면에서 탁월한 무대 미장센으로 형상화된다. 그 순간, 허름한 벽지로 이루어진 방의 내부 벽면은 마법처럼 움직이며 오래된 흑백사진의 입체적인 장면으로 전환되고, 그 가족사진 속 얼굴들과 유사한 인물들이 객석 관객들 속에서 소환되어 죽음으로 향하는 할머니를 위로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두세 평 남짓한 할머니의 방은 무너져 내리며, '보이지 않는 도시'로 상징적 전환을 이룬다. 이때 해체되는 가옥 구조는 비극적이고 먼지투성이이며, 할머니의 텃밭과 장독대는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마술적 환상으로 표현된다. 사라져가는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도시'에 대한 애도의 형상화이며 왜 이 작품의 제목이 <보이지 않는 도시>인지를 설득력 있게 말해주는 장면이다. 60분 동안, 연극은 환상성과 현실성, 동화적 판타지와 전통 가면극의 풍자성, 그리고 탈 극적 유형성을 환상과 가면, 마술처럼 유령하며 부유(浮遊)하는 연극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아쉬운 몇가지들
아쉬운 점은, 극의 서사가 짧고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도시>는 중간에 철거반들이 텃밭의 고추를 따며 관객과 상호작용을 유도하거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의 직접적인 애도적 참여를 끌어내는 연출적 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관객과의 거리를 오히려 좁히지 못한 채 열린 구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 사라지는 도시에 대한 애도의 슬픔이 전소된 느낌이다. 만약 이 작품이 열린 극의 구조가 아닌 섬세하고 응축된 구조로 서사화되었다면 <보이지 않는 도시>는 더욱 비극적인 무게감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 작품만큼은 연출의 총체적 자원들을 동원하되, 극적인 몰입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었더라면. 극적이고 신비로운 환상성으로 드러났을 수도 있다. 때로는 풍자성을 줄이고, 열린 구조를 닫을 때 비로소 더 깊은 의미가 발생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영봉 연출의 <보이지 않는 도시>는 한국 연극의 변방에서 실험적 가능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유영봉의 연출적 자원들이 극단 서울 괴담의 작품 형식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단지 괴담에 그치지 않고 연극적 충격과 구조의 변화를 유발하는 실험의 현장(공간)임을 형성하는 측면에서 매우 실험적으로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단 서울 괴담과 연출가 유영봉은 미아리고개를 사이에 두고 성북동 변방에서 오히려 연극의 형식적인 전환을 통해 제도권 연극으로 실현될 수 있는 꼬리를 무는 괴담을 무대와 무대 밖에서 현실화할 수 있는 극단이자 연출가 분명하다. 서울 괴담의 <보이지 않는 도시>는 강렬하면서도 아쉬운 몇 가지에서 얘기한 것처럼 아쉬운 잔상이 남는 공연이다. 장점은 비평을 쓰는 지금도, 그 잔상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꼬리를 무는 극단 '서울 괴담'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꼭 보셔라. 할머니, 도도의 캐릭터를 탈화한 오선아, 허진 연기와 몸의 유연성과 발화되는 감각들이 좋고 배우들 앙상블은 유영봉 연출 형식에 맞게 무대를 만든다. 2010년도에 창단된 서울괴담의 작품들로는 <외계인 출몰구역>, <두할-할망할망>, <기이한 마을버스여행–성북동>, <기이한 마을 여행–삼청동>, <도서관 오딧세이>,<보이지 않는 도시>, <여우와 두루미>, <서울탈춤>, <디아스포라기행> 등이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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