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여야 간 권력이 교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50년 만에 보수 독점의 아성이 무너진 것이다. 이후 28년 동안 보수 정부는 나락을 굴렀다. 3번의 집권 중 5년 임기를 마친 보수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유일하다.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의 파면으로 중도 퇴장했다.
국정농단과 비상계엄은 벗어나기 어려운 2000년대 보수 정치의 원죄다. 박근혜의 시련이 끝나자 시작된 윤석열의 시련은 보수 정치의 재건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더욱이 내란, 김건희, 채 해병으로 옭아 매어진 특검정국은 윤 전 대통령 일가의 몰락을 예고한다.
이로써 전통적 가치와 민생을 지키는 유능한 보수정당 신화는 소멸했다. 사실 민주화 시대의 보수정당은 무능했다.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를 이어갈 경제성장 전략은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김영삼 정부의 실정으로 국가 부도의 위기에 직면하고 성장동력이 붕괴했다. 경제를 회생시켜 위기를 극복한 치적은 김대중 정부의 몫이었다. 산업화는 뒤졌으나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국가발전 전략으로 인터넷 강국을 창조하며 진보의 유능함을 과시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었나? 지금 분열로 망해가는 건 국민의힘이다. 친명계의 폭압에 숨죽이면서도 적전분열하지 않는 더불어민주당의 단합력이 오히려 놀랍다. 민주당 지지율은 50%를 넘나드는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그 절반에 걸쳐 있다. 이재명이 싫어서 김문수에게 투표한 계층이 이탈한 결과다.
묻지마 지지층 외에 사실상 모든 국민이 국민의힘에 등을 돌렸다. 작금의 국민의힘은 기껏해야 내란 동조범으로 추궁받는 무기력한 파당에 불과하다. 자력으로 갱생할 수 없다면 위헌정당 해산의 파고에 수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니 최근 세 차례 총선에서 연패한 국민의힘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구제될 일은 만무해 보인다.
국민의힘 최연소 국회의원 김용태가 이끈 비상대책위원회가 내쫓기듯 물러났다. 소장파의 정풍(整風)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었으나 대선용 얼굴마담으로 수명을 다한 것이다. 특히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지방선거 상향식 공천, 민심 반영 당원투표 등 5대 개혁안의 좌초는 정치의 비정함을 넘어 친윤 기득권의 여전한 위세를 증명한다.
앞으로 또 다른 비대위나 무슨 위원회가 들어선다 한들 국민의힘을 소생시킬 방도는 막막하다. 그래서 이재명 집권의 일등공신 윤석열과 친윤은 정치적 금치산자와 다를 바 없다.보수층이 국민의힘에 관심을 거두지 않는 것은 그 정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보수정치의 몰락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그리고 삼권분립의 붕괴를 목도하는 현실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과 탄핵을 심판하는 대선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후보를 내세웠다. 결국 권력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배신자를 응징하겠다는 저열한 행태가 필패를 촉진했다. 그럼에도 폐족으로 몰락한 친윤은 여전히 지역주의를 볼모로 삼아 기득권을 연장하고 있다. 누구 하나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겠다는 TK 의원이 없다. 더욱이 십여 명에 이르는 대구시장 후보들의 하마평은 잿밥에만 눈먼 위선자들의 촌극을 보여준다.
보수정치의 재건은 두 개의 명징한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비상계엄 사태와 조기 대선 평가. 그러나 친윤이 장악한 국민의힘에서 이 과업이 순행할 리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기회는 전당대회다. 당원의 총의를 모으는 장에서 개혁세력이 당권 투쟁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국민의힘에 미래는 없다. 새로운 친윤 비대위가 기득권을 엄호하겠지만 개혁 연대와 민심의 힘으로 이를 압도해야 한다.
어떤 철학도 비전도 없이 권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도당을 퇴출시켜야 한다. 폐족 친윤을 청산하지 못한 보수정치 혁신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그리고 비상계엄과 탄핵의 역사적 과오를 처절하게 반성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만약 이 과업에 실패한다면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정치 플랫폼은 용도 폐기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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