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조규덕] 권원강 교촌치킨 회장이 구미에 남긴 것은

입력 2025-06-23 16:12:05 수정 2025-06-23 17:39:11

조규덕 경북부 기자
조규덕 경북부 기자

1990년대 초, 국내 육계 산업은 '닭고기 파동'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혼란에 빠졌다. 조류 질병과 공급 불안정으로 1㎏짜리 생닭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자, 많은 치킨집들이 닭의 크기를 줄이거나 품질을 낮췄다. 그러나 구미의 한 작은 가게 주인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1㎏짜리 닭이 없으면 500g짜리 두 마리를 튀기면 되지 않겠나."

이 단순하지만 뚝심 있는 발상은 원가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태도에서 나왔다. 작은 가게였지만, 손님 앞에서만큼은 원칙을 접지 않았다.

다리와 날개가 네 조각씩 나온 그 치킨은 곧 입소문을 탔고, 남은 부위를 중심으로 한 부분육 메뉴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훗날 '허니콤보'로 진화한 이 메뉴는 대한민국 치킨 시장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이 정직한 고집의 주인공이 바로 교촌치킨의 창업주 권원강 회장이다. 1991년 3월, 경북 구미시 송정동의 33㎡(10평) 남짓한 가게에서 교촌은 시작됐다. 그는 과거 노점상, 택시 기사, 막노동까지 거치며 생계를 이어 가던 중,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치킨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품었던 단 한 가지 신념은 '정직이 최고의 상술'이라는 것이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구미는 다시 이 정직의 철학을 기억하고자 한다. 바로 '교촌1991 문화거리'가 그것이다. 교촌 창업의 발상지였던 송정동 일대를 브랜드와 도시의 역사를 담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다. 단순한 테마 거리 조성이 아니다. 이는 한 도시와 기업이 공유한 기억과 철학을 공공–민간 상생 모델로 구현한 사례다.

총사업비 18억원 가운데 교촌이 13억원, 구미시가 5억원을 분담했다. 교촌은 1호점을 플래그십 매장으로 리모델링하고 특화 메뉴와 체험 콘텐츠를 기획했으며, 구미시는 웰컴존과 조형물, 거리 기반 시설을 구축했다.

'문베어' 캐릭터로 꾸며진 치맥공원, 교촌의 성장사를 담은 역사문화로드, 브랜드의 대표 소스를 테마로 한 소스로드 등이 조성됐다. 단순한 전시나 마케팅이 아니라 기억을 걷는 경험이 가능하도록 구성됐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구미가 키운 브랜드'가 다시 '도시를 살리는 자산'이 돼 돌아온 순환 구조라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는 전략적 파트너십의 모범 사례다.

실제로 교촌은 다년간 구미 지역 고교·대학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다자녀 가정에 난방비를 지원했으며, KLPGA 대회를 개최하는 등 지속 가능한 기업시민 역할을 실천해 왔다. 브랜드의 단기 홍보를 위한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선택한 것이다.

이제 공은 구미시에 넘어왔다. 문화거리가 진정한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단지 기업의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상인·시민들과 연결된 공동체형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상생 프로그램, 지역 청년 창업과 연계한 콘텐츠 운영, 정기 행사의 구조화 같은 후속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도시는 브랜드를 통해 상징을 얻고, 브랜드는 도시를 통해 뿌리를 내린다. 권원강 회장이 보여 준 '정직한 창업'의 정신은 단지 한 기업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다시 도전하는 도시 구미에 불을 지폈다.

구미가 가진 자산은 단지 치킨이 아니다. 그 치킨에 담긴 철학이다. 그 출발점을 품은 구미는, 이제 그 정직한 창업 정신을 도시 전략의 뿌리로 삼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