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제폭력, 여전히 처벌보다 '무대응'…해외는 어떻게 다를까
의무체포·전자감시·영구적 접근금지…바뀌지 않으면 또 죽는다
가정폭력과 교제폭력 피해자가 9차례나 경찰에 신고했지만, 끝내 살해당한 '동탄 납치·살인 사건'이 한국의 대응체계 민낯을 드러냈다.
현행법은 교제폭력을 가정폭력으로 다루지 않으며, 접근금지 감시도 없어 피해자는 법적 보호 아래서조차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가정폭력처벌법' 개정과 함께 의무체포제 도입, GPS 전자감시 장치 적용, 주공격자 식별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복된 신고에도 경찰은 '허술한 대응'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9일 발간한 보고서 '동탄 납치·살인 사건으로 본 가정·교제폭력 대응체계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서 해당 사건을 대표적인 구조적 대응 실패 사례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반복된 신고와 고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미흡한 대응으로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했다"며 "한국의 가정폭력 대응체계는 국제 기준에 비해 현저히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12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 발생한 납치·살인 사건은 교제폭력 대응체계의 허술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해 9차례 경찰에 신고했으며, 고소장과 변호사의 고소이유보충서까지 제출했다. 그런데도 화성 동탄경찰서는 고소인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경찰은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했고, "안전조치가 곧 종료된다"고 통보했다. 피해자는 지인의 도움으로 은신처를 마련해 머물렀지만, 가해자는 불법업소를 통해 피해자의 거처를 알아내 납치·살해했다.
해당 사건은 경찰의 1차 대응에서부터 접근금지 명령의 실효성, 법적 사각지대까지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입법조사처는 "피해자가 여러 차례 신고했음에도 경찰은 체포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장 조치를 외면했고, 이는 제도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의 한계, 현행범 체포는 거의 불가능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경찰관이 가정폭력 사건에 출동한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범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조사처는 "현행범 체포는 실제로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며 "폭력의 현행성, 가해자의 도주 우려, 범죄의 명백성 등 대법원 판례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가정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신체적 상처를 드러내지 않거나, 폭력이 종료된 이후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아 현행 체포 요건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가해자를 바로 체포하지 못하는 구조가 피해자를 반복적으로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반의사불벌' 규정과 '교제폭력 사각지대'
입법조사처는 "경찰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고, 처벌 의사만 확인한 채 현장을 떠나는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은 피해자의 고소 의사를 묻고 철수했으며, 그로부터 불과 2분 만에 피해자는 다시 폭행을 당했다.
또한 현행법은 '교제 중인 관계'를 보호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가정폭력처벌법은 혈연, 혼인, 사실혼 관계만을 적용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제폭력은 형법상 일반 폭행으로만 처리되며, 피해자는 접근금지 명령조차 신청할 수 없다.
보고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교제폭력 역시 가정폭력과 유사한 범죄로 다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효성 없는 접근금지…감시 수단은 '없다'
접근금지 명령은 존재하지만 이를 실제로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단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입법조사처는 "가해자가 법원의 명령을 위반하더라도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피해자는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신변의 위협에 시달리거나 숨어 지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현재 한국의 접근금지 명령은 최장 6개월, 피해자 보호명령일 경우 2년이지만, 미국·영국처럼 사실상 '무기한 접근금지'가 가능한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편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의무체포·전자감시'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미국은 의무체포 제도를 통해 경찰이 현장에서 반드시 가해자를 체포하도록 하고 있으며, 접근금지 위반 시 문자·전화 등 사소한 접촉 시도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영국은 체포우선주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으며, 법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접근금지 명령을 영구적으로 연장할 수 있다. 경찰은 위반자를 즉시 체포해야 하며, 법원은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호주도 GPS 위치추적 전자감시를 포함한 다양한 감시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시급"…4가지 개선 과제 제시
입법조사처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을 통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네 가지 개선 과제를 제안했다.
우선 현행범 체포 요건의 완화다. 폭력 발생 시점부터 24시간 이내를 현행범으로 간주하는 특례 규정 도입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쌍방폭행 판단 기준의 마련이다. 폭력의 경중, 행위 의도, 정당방위 여부 등 명확한 법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GPS 전자감시 도입도 제안했다. 접근금지 명령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위치추적 장치 운영이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마지막으로 교제폭력 피해자도 가정폭력처벌법의 보호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우리 사회가 교제폭력과 스토킹 범죄를 여전히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인식과 법제도 전반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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