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이화섭]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입력 2025-06-19 14:09:46 수정 2025-06-19 16:55:15

불교 법회에서 가장 많이 독송되는 '천수경'(千手經)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진언(眞言)이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다. 천수경 독경에 들어가면 일단 정구업진언을 세 번 반복하고 진행하는데, 정구업진언의 전문이 바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다.

우리는 이 정구업진언을 마치 서양의 '아브라카다브라'처럼 마술이나 마법 부릴 때 쓰는 주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보면 우리가 말로 지은 죄업을 씻는 것만으로도 세상 사는 게 마법처럼 편해질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주를 넘어선 지금,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속 친한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볼 때마다 이 '정구업진언'을 권하고 싶다. 평소 만날 때는 세상 착한 사람들이 이번 대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입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은퇴를 하고 여유로이 전원생활을 즐기는 한 선배도, 그 나름 자수성가한 부모 밑에서 잘 자란 후배도, 좋은 대학을 나와 석사 박사를 거쳐 세상 이치를 꽤 안다고 여기는 친구도, 유학도 갔다 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한 아는 동생도 이번 대선 앞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위해 다른 후보들을 비난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았다. 비난을 넘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와서 그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표현을 마구 써 댔다.

'기자'라는 신분이라 그런 분위기에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씁쓸함을 넘어 상처와 슬픔으로 가득찼다. 그 상황에서만큼은 내가 알던 인자한 선배, 착한 후배, 똑똑한 친구, 성실한 동생이 아니었다. 그저 아귀다툼을 하는 지옥도 속 한 점에 지나지 않았다.

SNS 속에서 정치를 주제로 서로를 이토록 적대시하는 광경을 그려내는 사람들 또한 누군가의 부모일 테다.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SNS 속 부모의 맨 얼굴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해 본다. 아니, 팔 부러질 각오를 하고 넘겨짚어 보면 이들의 맨 얼굴이 이미 아이들에게 투영돼 있다.

요즘 어린이들은 자신이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로 편을 가른다고 한다. 아예 친소 관계가 아파트로 결정되는데, 문제는 학교 안에서 누구는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누구는 아파트 전세, 누구는 아파트가 자가라는 것을 아이들이 너무 잘 알고 있고, 이를 토대로 아이들 사이에서 계급을 가르고 차별한다고 한다. 이걸 아이들이 누구에게서 배웠을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자명하다.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아니다. 부모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들으며 아이들은 차별과 급 나누기를 배웠다. 아이들도 귀가 있고 들은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부모에게 배운대로 차별과 급 나누기를 당연히 여기는 세상을 만들기 전에 우리는 서로의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까지 사람들 마음속에 서로를 긁고 찌르고 할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괜찮은 척하지만 괜찮지 않다는 것을 서로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섣부르게 봉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이토록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만큼 그 치료 과정도 고통스러울 것이기에, 이를 견디는 주문으로 '정구업진언'을 권한다. 울컥할 때 속으로 읊어 보자.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