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부 기자
지방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동네 병원에서는 어디 뼈 부러진 것이나 치료하지 큰 병 걸리면 무조건 대도시로 가야 한다." 지방 의료진에 대한 끝 모를 불신감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부족한 지방 의료 인프라를 경험한 사람들의 한탄이 섞인 말이다. 지방에 살다 보면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서울 병원을 찾아갔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더라'는 식의 경험담을 너무나 쉽게 들을 수 있다.
시작하기에 앞서 지방 의료진을 폄하하는 글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지금도 오지에서 훌륭히 활동하며, 마을 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의료진들에게 오히려 진심으로 존경을 보낸다. 다만, 이토록 오랜 의료 불신이 지방에 왜 쌓여 왔으며, 어떻게 하면 해소할 수 있을지는 분명히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가치와 정치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보면 지방 의료 부족을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대학병원 건립이다. 물론 실력 있는 교수진 영입이나 명망 있는 대학의 존재, 수익 구조 개선, 의대 정원 확대 등 선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인구 소멸에 맞닥뜨린 지방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갈망일 터다. 특히 경북의 경우 17개 광역시·도에서 최대 의료 취약지로 꼽힌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포항에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숫자 역시 평균 1.41명으로 17개 시도 중 16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 포항은 지난 2015년부터 포스텍(포항공과대학교) 의대 출범을 추진해 왔다. 국회와 정부의 문턱을 넘기 위해 그 나름대로 멋진 전략도 세웠다. 일반적인 의과대학이 아니라 '의사과학자'라는 처음 듣는 개념을 들고서 말이다. 보통 의과대학이 단순히 의사만을 길러 내는 곳이라면 포스텍의 의사과학자는 백신·신약 개발에 특화된다. 포스텍이 보유한 극저온전자현미경, 세포막단백질연구소 등 우수한 연구 역량을 십분 발휘해 아직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질병을 타파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 코로나19 사태 때 전 세계가 백신·신약 개발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후발 주자에 머무르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코로나19 이후 포스텍 의사과학자 양성은 꽤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2022년 정부의 120대 국정 과제 및 대통령직 인수위 경북 지역 정책 과제에 포함됐고, 지난해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가칭)' 신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대 정원 갈등과 계엄 등 뜻하지 않은 암초로 뚜렷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번 대선 기간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인천·전남·전북에 공공의대, 경북에 일반의대 설립 및 상급종합병원 유치를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정치인의 공약이 그저 지방 표를 얻기 위한 감언이설에 그치지 않고, 의대 정원 배정 논의가 새 정부에서 서둘러 재개되기를 포항은 간절히 바란다. 지역이기주의적 욕심이 아니라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바이오헬스산업이라는 신성장 동력이 경북 동해안의 새 빛이 되기를 기원하는 목소리이다.
경북 전체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만큼 일반의대가 포항이 아닌 경북 지역 다른 곳에 유치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제는 어디에 대형 병원이 들어서느냐가 아니다. 그 대형 병원이 얼마나 많은 지역을 품고, 얼마나 지역민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느냐는 점이 더욱 큰 숙제다.
한 가지 더, 코로나19가 지나고 한국은 신약·백신 개발의 중요성을 너무나 쉽게 잊었다. 지방 의료 개선과 동시에 활발한 바이오 연구개발로 지역과 상관없이 누구나 '아프지 않을 권리'를 되찾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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