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전환점마다 등장한 게 있다. '깡패'다.
광복 후 혼란한 한국에서 정당은 힘이 센 청년 집단이 뒷골목에서 무력을 써 주지 않으면 활동하지 못했다. 좌익과 우익은 서로를 꺾으려 폭력과 협잡을 일삼았고 암살도 저질렀다.
그러다 우익이 주도권을 잡은 게 첫 전환점이다. 미군정이 반공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지원했기 때문이다. 제주 4·3 사건에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서북청년회,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김두한이 이끈 대한민청이 대표적이다.
깡패는 부정선거에도 동원됐다. 1960년 대선 때가 절정이었다. 깡패들은 기표소에 가서 유권자들이 여당인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 후보를 찍을 것을 강요했다. 또 야당인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을 두들겨 패고 다녔다. 이에 이승만은 8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3·15 부정선거다. 그러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4·19혁명이다. 이 역시 막으려고 깡패들이 동원됐으나, 성난 시민들을 꺾진 못했다.
이후 대한민국 깡패는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반복했다.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후 사회 정화 캠페인의 하나로 깡패들을 대거 잡아들여 조리돌림시켰다. 한국 정치 깡패의 원조 이정재를 사형에 처하는 등 이승만 정권 때부터 활동한 정치 깡패들을 청산했다. 그 속내는 이랬다. 이승만 정권에 책임을 물으며 반대로 현 정권의 정당성을 높이는 것.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1980년대는 깡패라는 명칭이 '조폭(조직폭력배)'으로 진화한, 깡패들의 전성기였다. 조폭들의 주요 수입원인 유흥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잇따라 결정되며 건설·재개발·민간경비 산업 붐을 맞았는데, 이때 돈과 이권을 얻으려는 조폭들의 사업 진출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렇게 너무 잘나가자, 그들은 다시 국가의 척결 대상이 됐다.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이다.
그런데 어느 정권도 깡패들을 혼은 냈으나 박멸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2016)의 저자 존슨 너새니얼 펄트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와 깡패는 협력과 긴장의 관계를 반복하며 공모한다." 공모의 주도권은 늘 국가가 쥔다. 즉, 국가 권력이 비국가 권력인 깡패를 관리한다는 얘기다. 실은 동서고금에서 국가는 호족, 용병, 해적과 협력했고, 그 현대 버전이 깡패인 셈이다.
요즘 평범한 국민들이 치안 차원에서 두려워하는 깡패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영향력이 작다. 다만, 한국 현대사의 태동부터 작용해 이제는 DNA(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깡패성'은 공기처럼 만연하다.
일단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리지 않고 토론이 아닌, 진영 대결을 벌이는 게 깡패성이다. 한 대선 경선에서는 보스를 '수술시켜' 새 보스를 옹립하려다 실패하는 등 삼류 누아르 영화를 한 편 찍은 것도 깡패성이다. 은퇴한 보스들이 각자 근거지에서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분파된 조직의 보스가 배반의 서사도 쓰며, 어느 신생 조직 보스는 마치 길거리의 칼춤 같은 언변으로 존재감을 높이려 애쓰는 게 다 깡패성이다.
곧 대선이다. 군인들을 깡패처럼 동원하려다 파면된 대통령 자리를 다시 채우는 선거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깡패성을 끊는 정부가 들어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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