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신화 뒤엔 김문수 있었다?…역도 사상 첫 연봉계약부터 전용체육관까지

입력 2025-05-22 10:58:13 수정 2025-05-22 11:32:29

김연아·이국종과 함께한 '결과로 말하는' 김문수의 행정 이야기

2008년 8월 29일 오후 경기도청을 방문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장미란 선수(오른쪽)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농담에 크게 웃고 있다. 사진. 경기도뉴스포털
2008년 8월 29일 오후 경기도청을 방문한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장미란 선수(오른쪽)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농담에 크게 웃고 있다. 사진. 경기도뉴스포털

두 팔로 들었던 건 쇳덩이였지만, 그녀가 들어 올린 건 한 시대의 자부심이었다.

장미란. 매트 위에서 묵묵히 바벨을 끌어안던 이 선수는 한국 역도의 상징이 되었다.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이 세계의 벽을 넘던 그 발걸음 뒤엔 아무도 모르게 길을 닦아준 한 사람이 있었다. 거대한 기계처럼 보이는 행정 시스템 속에서도 단 한 명의 선수를 위해 규정을 뛰어넘고, 전례를 깼던 결단의 주인공.

김문수. 현재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나선 그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경기도를 이끌며, 장미란이라는 이름 뒤에서 묵묵히 받침돌이 되어주었다. 대한민국 역도 사상 처음으로 연봉 계약이라는 파격을 안긴 것도, 훈련과 생활을 동시에 책임질 전문 체육관을 세운 것도 모두 그의 조용한 결정에서 시작됐다.

2007년 2월 20일, 장미란은 강원도 원주시청을 떠나 경기도 고양시청으로 소속을 변경했다. 당시 체결된 계약은 한국 역도 역사상 전례 없는 조건이었다. 계약금 1억 7천만 원, 연봉 1억 원, 총액 4억 7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은 당시 체육계에선 상상조차 어려운 규모였다. 연봉 계약이라는 형태 자체가 국내 역도계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일이었다.

이 계약은 단순한 지역 이적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체급에 맞춘 예우를 넘어, 장미란이라는 한 선수가 당당히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의 강한 의지와 판단이 있었다. 그는 실력 있는 선수가 자존감을 지키며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체육 행정의 틀을 바꿨다.

장미란이 고양시청 소속으로 경기를 대표하게 된 이후, 김문수 후보의 지원은 눈에 띄게 구체화됐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2010년 2월 4일 개관한 '고양 장미란 체육관'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문을 연 이 체육관은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3,445㎡ 규모로, 총 11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체육관에는 장미란을 비롯한 역도 선수들이 고강도의 훈련을 소화할 수 있는 전용 연습장과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 시스템이 설치됐다. 회전·수직 이동이 가능한 동작 분석 카메라 6대, 컴퓨터, 스크린을 갖춘 영상 분석 시스템은 선수의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고 피드백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한, 사우나, 샤워실, 물리치료실, 웨이트트레이닝장, 비디오 회의실, 선수 전용 식당과 숙소까지, 선수들이 생활과 훈련을 병행할 수 있는 통합적 훈련환경이 갖춰졌다.

이 체육관은 2009년 고양에서 개최된 세계역도선수권대회 당시 부분 개관되어 국제대회 무대로 활용됐으며, 국내외 선수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문수 후보의 직접적인 개관식 참석 여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설 건립의 예산 배정과 행정적 추진 과정에서 그의 의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관계자들의 일관된 증언으로 확인된다.

같은 해 12월 27일, 장미란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경기도청을 찾았을 때, 김문수 후보는 직접 그녀를 만나 축하했다. 장미란은 당시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우승한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상태였다. 김 후보는 "국민으로서 매우 자랑스럽다"며 장미란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고, 그녀의 훈련과 활동을 위해 경기도가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미란 또한 "경기도의 도움과 신뢰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김문수 후보의 이런 행보는 장미란 선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김연아 선수와 관련한 미담이 공개되면서, 그가 평소 말보다 행동으로 인재를 도운 정치인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김연아가 아직 고등학생이던 2006년, 국내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인식은 낮았고 기업 후원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세계 무대를 준비하던 김연아는 훈련비와 안무비 등으로 매년 수천만 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체육회나 연맹의 지원은 충분치 않았고, 그조차도 일회성에 그쳤다.

이때 김문수 후보는 김연아를 경기도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공식적인 예산을 통해 해외 훈련비, 안무 제작비, 장학금을 포함한 실질적인 재정 지원을 마련했다. 그는 단지 명목상의 후원을 넘어, 선수의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김연아의 어머니를 지사 관사로 초청해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넸다.

장미란, 김연아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들의 땀과 노력은 물론이지만, 뒤에서 그들을 믿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준 김문수 후보라는 이름 없던 조력자의 존재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김문수 후보는 자신이 펼친 이러한 지원 사례들을 외부에 자랑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을 삼갔고, 주변 인물들을 통해 뒤늦게 알려진 미담들이 세상에 조용히 퍼져 나갔다.

이국종 교수와 함께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추진할 때도 그랬다. 정부 예산과 제도적 지원이 미비했던 상황에서도 그는 의료계의 절박한 요청을 받아들이고, 예산 확보와 제도 개편을 위해 앞장섰다.

이처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행정은 성과 중심의 정치가 아닌, 사람 중심의 정치에 가까웠다. 체육이나 의료처럼 시장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에서 그는 언제나 먼저 움직였고, 묵묵히 결과로 답했다.

표를 위한 정치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결단. 장미란이 매트 위에서 바벨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건 단지 근육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곁에 있었던 믿음, 묵묵히 길을 열어준 한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낸 무게였다.

그 무게를 누구보다 단단히 감당했던 이름, 김문수. 그가 지나간 길 위에는 오늘도 누군가의 꿈이 조용히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