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열전] 안철수와 이준석, 뛰어난 장수들의 벼슬 크기가 달라질 까닭

입력 2025-06-03 12:49:39 수정 2025-06-03 13:04:53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주저 없이 전장에 뛰어든 안철수

6·3 대선전에서 주요 정당의 세 후보를 제외하고 가장 눈에 띄는 정치인은 안철수 의원이다. 그는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선택 받지 못했다. 함께 경선에 나섰던 다른 후보들이 경선이 끝난 후 당적(黨籍)을 버리거나, 이런저런 조건을 달며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지원에 뜨뜻미지근할 때, 안철수 의원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어떤 약속도 요구도, 전제 조건도 없이 김문수 후보 지원에 뛰어든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단일화에도 적극 나섰고, 김문수 후보에게 '대통령 임기 단축, 4년 중임제' 개헌안을 제안했고, 김 후보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87체제'를 끝내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 진영의 지지를 끌어내는데도 기여했다. 또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는 "후보 교체 과정의 아픔을 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나서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향해서는 "경선 과정에서 서운한 점이 있었다면 국민과 당원들을 위해 너그러이 풀어주시기를 바란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향한 공격 역시 누구보다 매섭다.

▶실력과 인품 갖췄으나 벼슬 낮아

이광(李廣·?~기원전 119년 사망)은 중국 한나라 때 장수다. 그는 전투에 임했다 하면 이겼다. 전투에 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이장군 열전'은 이렇게 전한다.

「이 장군은 군사를 인솔할 때 식량과 물이 부족한 곳에서 물을 발견해도 병졸들이 물을 다 마시기 전에는 물 가까이 가지 않았다. 병졸들이 음식을 다 먹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도 음식을 먹었다. 이렇듯 관대하고 까다롭지 않아서 병졸들은 그의 휘하에서 싸우고 싶어 했다. 이 장군은 활을 쏠 때 적이 습격해 와도 거리가 수십 보 안으로 들어오지 않거나 명중시킬 자신이 없으면 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쏘았다하면 적이 고꾸라졌다.」

이처럼 용맹과 인품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이광의 벼슬은 낮았다. 황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투에서 싸울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를 몰랐다. 대장군들에게 잘 보이지 못했기에 대장군들은 이광에게 중요한 싸움에서 공(功)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장수가 높은 벼슬을 받는 것은 전투 능력은 물론이고, 중요한 싸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공을 세우느냐에 달렸다. 이광은 싸움에 능했지만 꼭 이겨야 할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

▶ 공(功) 세우고 표 받는 것이 정치인

정치인은 평소 유권자들에게 공(功)을 세우고, 선거에서 표로 돌려 받는다. 구군(區郡) 의원 출마자는 그 크기에 맞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출마자는 또 그 크기에 맞는 공을 세우는 것이다. 보수우파 진영의 대권 주자라면 보수우파 유권자들이 절박하다고 여기는 전투에서 공을 세워야 한다.

안철수 의원은 지금까지 많은 양보를 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자신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했음에도 지지율 5%에 불과한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그 양보는 대선 직행을 위한 포석(布石)으로 비춰졌고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 단일화'로 중도 사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로 사퇴했다.

안 의원은 여러 차례 양보했지만 그 공이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양보로 대가를 노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양보한 뒤, 단일 후보의 당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았다. 지지층의 눈에 들만한 공(功)을 세우지 못한 것이다.

▶ 싸워야 할 곳에서 싸우는 안철수

그랬던 안 의원이 6·3대선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 의원은 김문수 후보를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며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의 전력 차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며 "지금은 대장선(船)을 따를 때다. 그 길만이 승리의 길이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헌신, 모두 하나 된 마음과 행동이다"고 외쳤다.

당내 경선에서 패한 사람이, 자신의 경쟁자였던 후보를 이처럼 혼신을 다해 돕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선에 참가했던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안 의원 역시 국민의힘 당내 경선 과정에서 계파간 이해관계에 따른 앙금을 비롯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김문수 후보의 입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안 의원은 한마디 말 없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싸워야 할 곳에서 안 싸운 이준석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많은 보수우파 국민들로부터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 압박을 받고 있지만 꿈쩍도 않는다. 국민의힘이 사실상 대통령 후보직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이준석 후보에게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요지부동이다.

김-이 단일화 여부를 묻는 최근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이 후보는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완주 요청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우파 국민들은 이준석의 대선 완주를 보수우파 분열로 받아들인다. 보수우파 유권자들에게는 김-이 후보 단일화가 절박한데, 이 후보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준석 후보는 일을 잘 한다. 대선 TV 토론에서도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정치세대교체'라는 국민적 지지도 받고 있다. 능력이 뛰어나고 싸움에도 능하지만, 그는 적어도 6·3대선에서는 싸워야 할 위치에서, 싸워야 할 상대와, 싸워야 할 방식으로 싸우지 못하고 있다.

6·3대선이 어떤 결과로 끝나든 안철수 의원은 싸워야 할 곳에서 싸움으로써 보수우파 국민들에게 큰 빚을 안겼다. 반면 이준석 후보는 보수우파 유권자들이 절박하게 생각하는 전투에서 아직은 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에 따른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분명하게 할 것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5월 21일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5월 21일 '학식먹자 이준석' 행사가 열린 경기 성남시 가천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학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