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NFT는 분명 미술계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기대만큼이나 쟁점도 많았다. 지나치게 투기적인 시장 분위기, 예술성과 기술적 희소성 사이의 괴리, 그리고 블록체인의 에너지 소비 문제까지. NFT를 통해 거래된 수많은 이미지들 중 과연 몇 개나 '작품'으로 기억될까? 이러한 질문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을 되묻는다.
예술이 시대의 여러 사건들과 조응하며, 역사의 현상을 담아낸다는 예술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NFT는 기술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고 탐구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NFT가 처음부터 주목 받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디지털 이미지에도 '희소성'과 '소유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기술적 발견 때문이었다. 복제 가능한 것들 사이에서 단 하나뿐인 원본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예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갈증을 해소해줬다. 그러나 문제는 그 희소성이 곧 예술성으로 오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술은 희귀하다고 해서 예술이 되지 않는다. 물론 희소성이 예술의 가치를 지지해주는 힘이 될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감정이 있어야 하고, 맥락이 있어야 하며, 보는 이와의 관계가 필요하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매개로 진정한 관람자와의 교감을 이뤄냈을 때 진정한 의미를 획득해왔다. 결국 본질은 '희소성'이 아닌 '경험'인 것이다.
앞으로의 NFT는 더 이상 단순한 이미지의 거래가 아니라,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경험과 감정'을 매개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NFT가 작가의 창작 과정에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관계의 토큰'으로 확장된다면, NFT는 이제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예술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식이자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NFT가 만드는 새로운 경제 구조다. NFT의 가장 큰 장점은 창작자가 작품의 2차 거래에서도 지속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적인 미술 시장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향후 NFT가 단순한 소유의 수단을 넘어서, 예술가들의 지속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면, 이 기술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진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NFT는 지금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다. 과열과 냉각, 희망과 회의가 교차하는 이 시기야말로, NFT가 진짜 예술의 언어가 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른 시간이다. 어쩌면 예술은 늘 그런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눈에 띄는 낯선 존재의 등장은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이후 재평가와 함께 역사에 길이 남아 다시 질문의 대상이 된다. NFT 역시 그 흐름 안에서, 이제 기술을 넘어서 예술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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