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호 칼럼] 정치의 수요와 공급

입력 2025-05-18 12:37:35 수정 2025-05-18 17:53:04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정치에도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가 작동된다. 정치의 수요는 개개인의 모든 국민, 각종 회사, 각종 사회단체 등이 있고 정치 공급은 주로 정당이 담당하고 때로는 무소속 정치인이 담당한다. 우리 국민 약 5000만 명은 정치의 수요층이 각양각색이다. 극우에서부터 우파, 중도, 좌파, 극좌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수요층이 다양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수요층에 반응하여 정의당, 진보당, 조국혁신당 등과 연합하는 형태로 다양한 수요층을 흡수하여 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 수요에 대해서 무관심하여 왔고 정치 수요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우파의 정치 영역이 다양함에도 국민의힘은 당권을 누가 장악하는가에 따라서 정치인을 일방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정치 수요층의 다양성을 외면하고 정치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괴리를 가져왔다.

정치는 완전 시장경제가 아니다. 정치의 수요에 비해 정치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양당 정치에 의한 정치 공급이 독과점화되어 있어 군소 정당 및 무소속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정치는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이념, 정책) 경쟁을 하는 시장이다. 국민의 정치 수요가 변화함에 따라 정치 공급을 담당하는 정당도 혁신과 변화가 필요하다. 기본적 이념과 정책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수요를 흡수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치 수요에 맞추어 정치 공급이 이루어지는 완전시장 정치에 근접하는 나라가 독일 및 프랑스이다. 이들 나라는 정당의 창당과 이합집산이 심한 다당제 국가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정당이 창당되어 집권을 하는가 하면 기존의 정당이 급격히 쇠퇴한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의 정당이 대표적인 예이다.

마크롱의 정당은 의석수가 3%정도의 미니 정당(앙 마르슈, 전진이라는 뜻)이었는데 갑자기 대통령을 배출하고 절대 다수당을 차지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소수당으로 전락하였다. 독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다당제의 국가이다. 그래서 매번 연정의 형태로 정부가 구성되어 오고 있다. 일본은 양당제적 다당제 국가로서 연정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 반면 미국과 영국은 전통적으로 양당제 국가로서 정치의 공급이 제한되어 있는 외양을 보인다. 그러나 전당대회가 활성화되어 있고 연방정부로서 주 단위 선거, 연방 단위 선거 등 선거가 아주 많이 있으며 카운티 단위로 판사, 검사장, 경찰청장, 교육장 등도 선출직이어서 정치 공급이 아주 많은 나라이다. 카운티는 주의 하위 단체로서 1개 주에 약 30개 내지 250개 카운티(미국 전체 3033개 정도)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카운티는 기초단체, 주는 광역단체와 비슷하다. 미국에서 한 번 선거를 하면 일부 카운티에서는 기표를 해야하는 직위가 30여 개 되는 주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광역단체장, 교육감 등 5개 정도에 기표를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우리나라도 이제 정치 수요를 외면하는 정치인의 독점 공급이 사라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당제 도입이 필요해 보이며 기존의 양당제를 유지하더라도 공천 등을 함에 있어서 다양한 정치 수요를 충족하는 공천을 하여야 한다.

특히 국민의힘은 자유우파의 정치 수요가 다양함에도 당권파가 정치인 공급을 독식하는 바람에 당내 분쟁이 극심하였다. 이러한 원리를 직시하여 이제 국민의힘도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정치를 했으면 한다. 당에서 공급이 부족한 수요층은 자유우파를 지향하는 다른 정당과 연대하여 다양한 수요층에 부응하기를 바란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민간의 영역이다.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는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당비와 후원금을 내서 정치인을 양성하고 국민과 국가에게 공급한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선거공영제라 하여 정치의 공급에 필요한 비용을 대부분 국고에서 보조하고 있다.

정당 기부금도 전액 세액공제를 해줘서 선거 비용 및 정당 활동 비용의 90% 이상을 국고에서 보조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선거비용 조달을 위한 부정 방지라는 장점도 있지만 당원들의 의사를 우선으로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당비 보다는 공적 선거보조금액이 압도적으로 많은 선거공영제 하에서는 당권을 가진 자가 공적 선거자금을 독점할 수 있으므로 당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당내 민주주의를 위하여서는 선거공영제가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