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지난 5일.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자기 당 후보의 공판일을 대선 이후로 바꾸지 않으면 고법 재판 진행을 막을 것이라면서, 대법원장에게 선거운동 기간 중 잡혀있는 출마 후보들에 대한 공판 기일을 대선 이후로 변경하라고 발언했다.
그는 또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법봉보다 국민이 위임한 입법부의 의사봉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무례하고 경거망동한 언행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급기야 정치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대법원의 수장을 협박하는 꼴까지 보이는 형국이다. 국회의 독선과 독주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민주 정치의 근본은 권력 분립의 원칙이다. 권력 분립은 로크(Locke)와 몽테스키외(Montesquieu)를 비롯한 근대 자유주의 철학의 핵심 정치 원리이다. 민주 국가 헌법의 기초를 마련한 미국 헌법은 바로 이 원칙을 근거로 탄생했다.
독립 후 미국은 최고 효력의 헌법을 제정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정치체제의 조직과 운영을 규정하면서 권력 분립의 원칙을 엄격하게 구현하였다. 한마디로 권력 분립의 원칙은 국가 권력의 남용과 재량권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자유주의적 원리이다.
삼권분립은 국가의 기능을 세 기관으로 나누어 맡게 하는 것이다. 법률을 만드는 일은 국회가, 국익과 공공복지를 증진하는 일은 행정부가, 법에 따라 재판하는 일은 법원이 책임지도록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제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하며(제66조),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101조)고 각 권력의 소속을 명시함으로써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기능을 셋으로 나누어 맡기는 이유는 다름 아닌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오직 하나의 기관이 국가의 모든 일을 맡게 되면 아무도 권력 남용의 폐해를 막을 수가 없게 된다. 민주 국가가 삼권분립의 원칙을 따르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국가 기관도 국민의 기본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거작 '전쟁과 평화'의 작가로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Lev N. Tolstoy)는 평생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글을 썼다. 권력은 집중되고 커질수록 오용과 남용이 불가피해진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헌법이 국가 권력의 작용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누고 별개의 독립 기관에 분담시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도 결국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자국의 대통령을 독재자로, 대법원장과 사법부를 독재로 비판하는 데 앞장서면서 "국민의 뜻"을 외치는 국회가 독재의 길을 가고 있다. 국회 독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이다. 국회의원 한마디에 국민이 뽑은 행정수반이 날아가고 대법원장 협박받는 나라에서 과연 힘없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바보가 아닐까?
자신만의 유불리를 따져 보고 법을 제 멋대로 바꾸려는 사람들,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닌 상대편을 공격하고 있으니 잘한다고 박수 치는 사람들. 그들은 자기가 던진 부메랑이 반드시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삼권분립의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판국에 지방분권, 지방자치와 같은 말들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주민의 의사를 반영한 거버넌스는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의 마지막 발언은 내로남불의 정점을 찍는다. 공판 기일을 바꾸지 않으면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권력과 권한은 최소한으로 행사하는 게 원칙이다. 명백히 고등법원의 심리, 재판 진행은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다"고 답한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국회의 권력과 권한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문득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아담 스미스의 말이 떠오른다. 돌아보니 민주를 떠드는 정치인들이 진정 민주적인 일을 하는 걸 살면서 별로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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