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남정운 기자
꽤 오랫동안, 대구시의 도시 브랜드는 '컬러풀 대구'였다. 지난 2004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18년이나 사용했다. 지역 경제의 주축이었던 섬유산업을 연상케 하는 요소가 많아 대구 시민들의 반응도 대개 긍정적이었다.
그러다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대구시는 동그라미 5개 중 2개의 색만 바꾼 새 로고를 공개했다. 대구시가 제안한 신규 도시 브랜드 후보들을 제치고, '컬러풀 대구'가 선호도 조사에서 재선택된 것이었다.
다소 억울한 측면은 있어 보이지만, 당시 대구시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로고 변경 논의 기간만 3년, 들인 예산이 3억원을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비판을 피해 로고 변경 절차가 수개월 늦춰지기도 했다.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헛도는 논의-불확실한 결과'라는 전개가 최근 재연되는 듯하다. 그것도 '컬러풀 대구' 하면 바로 떠오르던 대구염색산업단지의 이전 절차에서다.
대구시는 오는 2030년까지 염색산단을 군위군으로 옮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시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전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염색산단 업체나 노동자, 인근 서구 주민들 모두 이전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준공 40년이 넘어 노후한 시설과 산업 특성상 필연적인 악취·폐수 배출 문제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지난 3월 말까지만 해도 염색산단 내부 하수관로에서는 폐수가 지속적으로 유출됐다. 행정 당국의 단속과 업체들의 개선 노력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주민 불안감과 환경 영향 우려는 여전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염색산단에 입주한 업체 절대다수는 "이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업체들은 이전 비용을 부담할 수 없고, 이전 부지의 면적이 너무 좁다는 등 다양한 난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 열병합발전소로부터 받고 있는 동력 수급 문제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입주 업체 127곳 중 대구시에 이전 동의 의사를 밝힌 건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대구시는 업체들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해 8월 마무리된 '대구 염색산단 이전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 검토 연구용역' 결과를 일부 공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시는 "이전 부지의 지가 문제와 주민 반대 등 이유 때문에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타당하다'는 용역 결과 없이도 업체를 설득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적어도 지난 9개월간 대구시는 그러지 못했다.
설득이 부족하고 근거는 공개하지 않으니 주민들의 신뢰도 역시 떨어지고 있다. 이전 계획을 믿지 못하는 주민들의 여러 문제 제기도 지금으로서는 피할 길이 없다.
대규모 산단 이전을 6년 만에 해내겠다는 것은 모든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돼도 촉박한 일정이다. 무책임하게 계속 미루며 진행할 일도 아니다. 4천여 명의 노동자는 물론, 시민 수만 명의 정주 여건이 달린 문제다.
오늘날 대구는 '파워풀 대구'라는 도시 브랜드를 쓰고 있다. 그 말처럼 힘이 넘치는, 시원시원한 일 처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용역 결과 일부를 공개하든, 이대로라도 이전이 어렵다고 고백하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업체와 인근 주민 등 이해당사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일은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동그라미 두 개 색깔 바꾸는 것에도 3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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