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변강쇠로 점찍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연극 무대에 정점을 찍은 고선웅 연출이 지난 6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에서 <퉁소소리>(서울시극단)가 국공립극단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백상연극상을 수상하며 고선웅 표 연극이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작품임을 입증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도 "드라마, 영화, 예능 분야를 수상하는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받으니, 연극이야말로 다시 한번 대중적인 예술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고선웅은 전화 통화에서 "연극상을 받을 수 있다는 예측을 못 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해서 작품과 이름을 듣는 순간 연극만큼 짜릿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백상연극상을 수상한 고선웅 연출의 <퉁소소리>는 조위한의 고전소설 『최척전』을 무대 위에 펼쳐놓은 듯한 작품이다. 인터미션을 포함한 150분 공연은 '최척 평전' 만화 시리즈 6권을 정주행하는 기분이고, 무대 위를 흐르는 여백의 해학은 과하지 않다.
'웃음'의 급소를 찌르는 고선웅 특유의 장단은 연출의 계산된 날카로움의 굵은 선을 유지하면서도 고선웅 표 한국적인 산수화에 푹 담긴 『최척전』은 실존 인물 최척과 그의 아내 옥영이 전란 속에서 겪는 고난과 재회를 중심으로 파편적으로 구성되는 작품이다. <퉁소소리> 초연 공연 당시 관극평을 소셜 네트워크에 올려놓고 게으름으로 묵혀두었다. 연극상 수상으로 글을 다듬어 최척의 생존신고를 연극리뷰로 세상에 내놓으니 그 시간 동안 최적만큼이나 현시대도 정치적 전란을 겪고 있다. 12·3 계엄 정국부터 탄핵사태를 거쳐 6·3 대선을 앞둔 국민도 비극적인 파동을 겪고 있으니 한국 사회가 『최척전』을 다시 쓰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치 전란의 시대에 최척을 통해 한 수 배우는 것도 생존비결이다. 17세기 고전소설 『최척전』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이라는 삼란(三亂)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가족의 생이별과 재회를 다룬 민중 서사다.

◆ 놀이와 서사의 정점, 고선웅 표 연극
고선웅은 고전을 각색하며 복원에 그치지 않고, '노년 최척'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액자 구조를 통해 극의 현재성과 시대의 거리감을 확보하며 허구와 기록, 연극과 역사 사이의 경계를 활보하며 연극적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조위한'이 『최척전』의 기록자임을 밝히는 구조는 '실제 사건'과 '허구 서사'의 관계를 전복시키는 고선웅 특유의 메타서사적 장치다. 전란의 길을 따라 파동 되는 최척의 유랑과 이산은 단순한 피난의 서사가 아닌, 사랑과 인간, 가족의 화합의 재구성이라는 윤리적 주제를 덧붙여 전란 속에서도 '인간 존엄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퉁소 소리를 들으며 고선웅 작품을 돌아보면, 중국 고대 비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대의를 위한 복수와 희생이라는 공(公)의 윤리를 다룬다면, <퉁소소리>는 '가족'이라는 사(私)의 회복을 중심으로 한 서사라 할 수 있다.
대체로 고전 설화를 연극언어로 무대화한 창극 형식들은 서사의 직선성과 해학의 외피, 음악 중심의 구성에 집중한다면, <퉁소소리>는 창극적 리듬보다는 대사와 몸짓, 해설이 주도하는 놀이성에 가깝고, 표현형식은 소도구 몇 개를 장면 틈에 슬쩍 밀어 넣는 방식만으로 극의 분위기를 환기한다. 배우들의 다중 역할 수행도 단순히 연기의 전환이 아니라, '서사와 놀이 사이의 긴장'을 장면마다 유발하는 연출적 장치로 활용된다. 배우 이호재는 '노최척' 역을 맡아 이야기의 서사를 이끄는 동시에 극 전체를 연극적 프레임 안에 고정하는 '이야기꾼'으로 기능하는데, 이는 고선웅의 연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사자(Storyteller)' 개념을 극적으로 강화하며, 서사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도 특징이다.

같은 재료라도 고선웅이 손대면 전혀 다른 용도로 무대에서 변주되는 고선웅 연극 특유의 놀이적 연출 미학은 점, 선, 색, 여백으로 흩어지고 농축되어 강렬한 미장센의 구도를 만들어 무대에 동양화 한 점을 그리듯, 장면을 '뚝딱' 만들어 내는 타이밍의 기발함은 변강쇠에서 옹녀로, 다시 조씨고아로 이어지는 고전 서사로 연출적인 진검승부를 보여온 고선웅이기에 가능한 조합이다. 극 중 장면에 고선웅 표 희극성에 점을 강렬하게 찍는 연출의 노련한 디테일로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진한 국물 같은 연극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재료요 간단하지만 맛은 다르쥬"라는 한 요리사의 말처럼, 연극적 밀도와 디테일에서 살아나는 '최척의 서사'는 신명과 해학성으로 돌진하면서도 고선웅 표 놀이성으로 극은 견고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몰입감을 높여준다. 그만큼 <퉁소소리>는 고전소설 『최척전』을 연극적으로 각색하고 재구성하면서도 단순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고전 서사의 시간성과 삶의 고통 속에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려는 인간적 윤리를 메타적 방식으로 환기하는 것은 고선웅이 '고전을 통해 이야기의 본질로 회귀'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고전의 현대화가 단순한 각색이나 배경 무대와 의상적 치장에 머무를 때, 박제된 문학의 문화자산이 될 수 있음을 환기해 본다면, <퉁소소리>처럼 서사의 뼈대를 유지하며 고전을 살아 있는 현재 시간으로 재현하는 작업은, 동시대 연극이 고전을 재구성하는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고전이 오늘날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숨 쉴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고전 서사의 미학과 놀이성을 동시대의 감각으로 변환하는 고선웅 표 연극언어의 정점을 보여준다. 특히 <퉁소소리>는 전란과 유랑, 사랑과 재회라는 드라마 구조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회복을 노래하는 고전 서사의 핵심을 유지하면서, 고전(전쟁, 희생, 이별, 사랑과 아픔, 이산의 재회)은 과거 고전문학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삶의 감각 일부가 된다. 그만큼 『최척전』의 전쟁과 인간애, 가족애는 현시대에도 유효한 이야기이다. 고선웅은 이러한 감정이 과장되지 않고 깊게 다가올 수 있도록 연극언어를 정제하고 단련해, 극 중에서 웃음의 급소를 찌르는 타이밍은 대체 불가한 연출가로서 서사적 감동과 연극적 미학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수 있다.
고전을 연극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내용의 재현이 아니라, 정서와 감각의 현재화다. <퉁소소리>는 동시대 연극이 지닌 '이야기적 힘'과 마당놀이적 '놀이성'으로 대체하면서도 연극의 핵심 상징이다. 극 중 '퉁소'는 악기가 아니라 고향, 정체성, 민족적 감각을 잇는 장치로 활용되고, 실제 퉁소 연주는 극 중 긴장과 이완을 유도하는 사운드로 기능하면서도, 고선웅은 퉁소소리를 배경이 아닌 사건으로 활용한다. 퉁소의 울림은 조선인과 청나라 병사, 일본군까지 감화시키며, '음의 언어'로 공동체적 정서를 구축한다.

◆ 점·선·색·여백으로 그려낸 고전의 미학
<퉁소소리>는 여백이 강조된 동양화 같은 무대와 최소한의 소도구 활용으로 배우 중심의 역동적 장면 전환을 통해 놀이적 구성력을 보여준다. 고선웅은 고전의 핵심 구조를 유지하되 각 장면을 연극적 리듬으로 재배열하며 감정의 굴곡을 강조한다. 무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는 시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장면을 조이고, 밀고, 당기며 템포의 오차를 좁힌다. 곳곳에 숨겨진 웃음 포인트, 지뢰 같은 유머들 사이로 최척의 일대기가 레고 블록처럼 견고하게 쌓여갈 수 있는 것도 고선웅 신호에 따라 앙상블과 연기의 노련함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다. 명나라 병사 훈련관 캐릭터는 경극 자세로 무술을 선보이며 자칫 과해질 수 있는 설정을 오히려 해설자 역할로 흡수시켜 극의 맥락을 더욱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산수화처럼 무대 여백을 강조하고, 소도구는 상징적 장치로 활용되며, 배우의 움직임은 마당놀이의 리듬을 닮아 있다. 해학과 비극, 침묵과 활극이 교차하며 각 에피소드가 '최척 평전 만화 시리즈'를 읽는 듯한 감각을 준다.
고선웅 연출의 강점 중 하나는 배우 중심과 앙상블의 집단 창작 방식이다. 배우들은 "말하는 몸과 움직이는 이야기"로 기능하며, 다중역할과 연극적 유희를 통해 고전 서사의 리듬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연기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연극의 구조와 시간을 배열하는 능동적 존재로서 작동한다. 이번 작품에서 배우는 감정에 호소하는 심리 연기보다 극 중 장면의 집단 구성 내의 박자감, 연기의 합, 배치의 미학을 중시한 고선웅 연출의 <퉁소소리>의 연출 방향성을 효과적인 집단적 앙상블로 드러내는데, 배우들의 연기의 리듬은 연출이 제시한 놀이의 규칙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게 된다. 무대에서 '놀이성'은 규칙이 중요한데, 고선웅의 연출 신호를 이탈하지 않는 배우들의 감각 역시 인상 깊다. 장면마다 흩어지고 모이고를 반복하면서도 무대 여백은 살아나고, 감정과 서사를 응축하는 리듬감은 고선웅이야말로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세밀한 연출가임을 <퉁소소리>로 실감하게 한다.

◆최척의 퉁소소리, 시대를 넘는 사(私)의 회복
특히 공연에서의 장면 전환 속도, 소도구의 전환 타이밍, 배우의 리듬 활용은 극의 에너지와 의미 전달을 입체적으로 강화한 지점이다. 특히 전란 장면에서는 과장된 사운드, 다중언어의 사용, 제스처 중심의 신체 표현이 혼합되어 시각적 콜라주를 형성하는데, 이 장면에서는 연극이 언어예술보다는 신체·소리·움직임이 교차하는 시각적인'이미지의 예술'로 작동하고 있음을 연출로 드러낸다. 고전의 현대화는 텍스트의 번안이 아닌 정서의 재맥락화로, 『최척전』의 가족 서사를 통해 오늘날의 해체된 공동체와 사(私)의 회복을 최척의 일대기로 치유하고자 한다. 장면으로 돌아보자. 전란은 공(公)적 역사의 비극이다. 최척은 전란의 '비극'을 관통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관심은 일관되게 가족, 아내 옥영(정새별 분), 딸과의 재회에 있다. 죽은 줄 알았던 딸을 우연히 만나는 순간, 적으로 등장한 병사가 퉁소소리에 감화되는 순간, 전쟁 중에도 '공의 질서'가 아닌 '사'의 감정으로 움직이는 것도, 국가를 위한 충의, 대의의 복수와 같은 고전적 서사의 통속적 윤리를 따르지 않고 한 인간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떠돌고, 살아남고, 끝내 다시 귀환하는 서사에 방점을 둔다.
이러한 무대 위의 사(私)는 단지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분열의 기억을 이어 붙이며 민족, 가족애로 봉합되는 통합과 화합의(愛)에 있다.'공정','정의','사법','이념 갈등','분열'과'시대개혁'같은 공적 담론의 피로감과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 정치 시대에 <퉁소소리>가 보여주는 서사는, '공의 윤리'가 무너진 자리에서 사(私)의 회복과 인간적 윤리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라 할 만하다. 해설자 역할을 맡은 이호재 선생의 존재는 <퉁소소리> 캐스팅의 '신의 한 수'라 할 만하고, 심 씨 역의 장연익, 최숙의 강신구, 정생원의 김신기, 젊은 최척의 박영민과 옥영의 정새별은 <퉁소소리>가 무대에서 균열음이 생길 수 없도록 배우의 노련한 감각들을 보여주었다. 이밖에 극 중 인물로 분한 배우들도 고선웅의 신호와 무대 규칙을 따르니, 앙상블의 리듬감이 붓이 되어 점·선·색·여백으로 채워내는 동양화 한 점을 만들어 냈다. 조위한(曺偉漢, 1567–1644)의 『최척전(崔陟傳)』을 원작으로 하는 고선웅의 <퉁소소리>는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작품으로, 특히 청소년들이 꼭 봐야 할 연극이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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