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 일자리 찾아 대구로 와
가정 꾸리자마자 수제화 산업 쇠퇴로 일자리 잃어
여러 일자리 전전했으나 형편 제자리…이혼 두 번 겪어
간경화와 간염으로 투병 중…약값 부담에 신음
옛말에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던가. 엄용현(67·가명) 씨는 비빌 곳 하나 없는 자신의 삶을 한탄했다. 두 번의 결혼을 거치며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됐으나, 어릴 적 연락이 끊긴 막내를 제외한 두 아이와는 간간이 안부 연락만을 주고받을 뿐이다.
용현 씨는 이혼 후 20년 넘게 홀로 살며 일용직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하지만 시린 무릎과 무상하게 흘러버린 세월이 그간의 생활마저 앗아가려 했다. 게다가 지난해 갑자기 찾아온 간경화와 간염은 용현 씨를 극도의 생활고로 몰아넣었다.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상황에 용현 씨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생활고 속 두 번의 이혼…20년간 일용직 하며 혼자 살아
용현 씨는 경북의 한 시골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정사진으로만 존재했다. 아파도 병원에 제대로 갈 수 없었던 시절, 아버지는 용현 씨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밭일 등으로 남은 가족들을 부양했지만, 가진 논밭도 없는 집안에 먹일 입은 많아 늘 형편이 어려웠다.
시골을 떠나 큰 장이 서는 마을로 터전을 옮긴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난전을 여셨고, 용현 씨와 형제자매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살 길을 모색해야 했다.
18살 쯤 용현 씨는 동네 지인을 따라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구둣방을 차린다는 스승을 따라 대구로 향했다. 대구 남구의 한 구둣방에서 일을 시작한 용현 씨는 스승을 도와 구두를 만들며 그곳에 딸린 단칸방에서 20대를 보냈다.
용현 씨는 퇴근 후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다니며 젊음을 즐겼다. 그러다 20대 초반, 사귀던 여자친구가 임신하며 가정을 꾸리게 됐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용현 씨 어깨를 짓눌렀는데, 결혼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용현 씨는 일자리를 잃게 됐다. 대구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수제화 산업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이후 용현 씨는 지인 소개로 양계장에서 일하며 두 아이와 배우자를 부양했다. 숙식 제공이 되는 곳이었으나, 새벽 4시 이전 일어나야 하는 고된 작업에 2년을 버티다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변변찮은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용현 씨는 술을 마시느라 집에 자주 들어가지 않으며 가족들과 사이가 틀어졌고, 이혼을 하게 됐다.
용현 씨는 5년 뒤 재혼해 딸 하나를 낳게 됐지만, 두 번째 결혼 생활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인에게 식당을 인수받아 운영하다 2년 만에 빚을 잔뜩 졌고, 카드 돌려막기로 빚을 메꾸려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 이후로 생활은 엉망이었다. 일용직 몸값을 잘 쳐주는 일본으로 돈을 벌러 두어 차례 떠나 봤지만, 입국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해 상황은 악화하기만 했다. 신용불량자 신분으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용현 씨는 4년 만에 또다시 이혼하게 됐다.
그 뒤 용현 씨는 일용직을 근근이 하며 20년 가까이 혼자 살았다. 집은 항상 셋방살이였고, 형편도 늘 비슷했다. 50대까지는 그래도 일감이 꽤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60대에 접어들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자 일이 끊기다시피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던 찰나 용현 씨는 주변인 도움으로 파산신청해 채무를 떨쳐낼 수 있었고,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엉망인 몸…의료급여 비대상자라 의료비 부담 상당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 작년 겨울 새벽, 용현 씨는 복수에 물이 차고 토기가 올라오는 증상을 겪었다. 날이 밝고 찾은 병원에서는 용현 씨에게 급성 C형 간염과 간경화 진단을 내렸다. 약물치료를 해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용현 씨는 진단서를 받아 큰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대구의료원에서 검사를 받은 용현 씨는 자신의 간 수치가 심각한 상태임을 알게 됐다.
병원에서는 용현 씨에게 다른 약물로 치료를 권했는데, 해당 약이 비급여라 매달 약값만 163만원이 들었다. 수급비의 두 배가 넘는 비용이었다. 이혼한 자녀 소득 때문에 의료급여 대상자도 아니라 병원비 부담이 상당했는데, 그간 두 달 분은 어떻게든 마련했으나 이젠 그럴 여력이 남지 않았다.
용현 씨는 주거 상황도 좋지 못하다. 그가 2년 전 이사 온 현재 집은 가건물이 덧대진 주택의 2층 쪽방이다. 가건물이 웃풍을 전혀 막아주지 못해 겨울이 되면 얼음장 같은 집은 기름보일러를 떼야 해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 화장실이 문밖에 있는 불편함은 차치하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팔라 관절염을 앓는 용현 씨는 매일 힘겹게 외출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인공관절 수술을 권했으나, 용현 씨는 아직은 버틸만하다는 생각으로 진통제를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이외에도 용현 씨는 위와 식도 상태가 좋지 않았고 불면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도 복용해야 했다.
용현 씨는 오랜 기간 의지할 곳 없이 살아온 삶을 후회했고, 자주 외로움과 우울감을 느꼈다. 젊은 날 더 착실히 살았어야 했다는 반성은 용현 씨를 잠 못 이루게 했다. 그런 용현 씨가 바라는 것은, 약물치료를 착실히 받아 간 수치가 호전돼 이전의 생활로라도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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