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김윤기]수혈 정치에 자강은 없다

입력 2025-04-23 15:47:00 수정 2025-04-23 15:47:37

김윤기 서울취재본부 기자
김윤기 서울취재본부 기자

"안철수 후보가 처음부터 보수정당에 왔으면 벌써 대통령이 됐을 겁니다. 이 당이 용병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한 국민의힘 계열 인사가 기자에게 최근 던진 말이다. 일견 18대 대통령 선거 후 진보 진영에 먼저 둥지를 틀었던 안 후보에 초점을 맞춘 얘기 같지만, 사실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과 자조가 핵심이었다. 당내에서 대선 주자를 키워내기보다 중량급 정치 신인을 갑작스레 외부에서 수혈하는 당의 습성이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4명으로 추려졌으나 정작 '최종전'은 따로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국민의힘 스스로 출마 선언조차 하지 않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대선 후보군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를 대선 후보로 지지하는 현역 의원이 50명이 넘었다는 설도 떠돌았다.

한 대행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인사들은 그가 정치 신인의 미숙함을 노출하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정치 경력이 없을 뿐 국정 경험은 '경력직 대통령'에 가깝고, 두 정권에서 장기간 국무총리로 재임하며 '여의도 정치'와도 비교적 익숙하다는 얘기다.

반론도 만만찮다. 19대 대선에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출마 행보에 나섰으나 금세 한계를 노출, 경주에서 이탈한 전례를 답습할 거란 목소리다. 한 여당 관계자는 "반 전 총장도 외교부 장관을 지내는 등 아주 오랜 공직 생활 속에 다양한 정무적 경험을 쌓았다. 한 대행이라고 다를 거라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단언했다.

21대 대선을 떠나 국민의힘이 고민할 지점은 매번 '용병'에 기대려는 당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에 있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한 대행의 출마 여부나 기존 후보 대비 경쟁력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스스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고 외부 영입을 통해 집권하려는 당의 '수혈 중독'이 걱정스럽다는 의견이다.

앞서 20대 대선에서는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지 못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가도에 올라탔다. 민심은 당에서 성장해 온 홍준표에 더 많은 표를 줬으나 당심이 외려 '외부인'에 쏠리며 판을 뒤집었다. 19대 대선에서도 당내 주류가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에 기대를 걸다 출마가 무산되고서야 홍준표 후보로 지지가 쏠렸다.

상습적인 대권 주자 수혈에 젊은 여당 의원들의 목소리에도 불만이 섞여 나온다. 정작 보수정당 정체성이 확고하고 조직을 위해 희생해 온 인물을 키워 주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이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성장할 여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18대 국회에 첫발을 들였으나 이후 정계를 떠난 홍정욱 전 의원이 4년 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지적을 내놔 기시감이 들었다. 그는 "보수정당은 그때도 지금도 (정치 신인을) 발굴하고 키우려는 노력과 역량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거나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면서 실제는 지도부가 부르면 부르는 대로, 가라면 가라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고 쓴소리를 내놨다.

이런 토양에서는 인적 자원 자체가 빈약해져 결국 용병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이런 행태의 반복을 두고 "잘되면 영입한 우리 덕, 못되면 용병 탓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린지 모르겠으나 분명해 보이는 게 하나 있다. 대선 주자로 매번 용병을 찾는 '수혈 정치'가 반복되는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비슷한 국면이 또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