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이종철] 정치 보복과 순진한 생각

입력 2025-04-17 13:45:19 수정 2025-04-17 13:46:29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사 영상을 보면 가장 참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 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는 인사를 많이 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이른바 '탄핵 선거'로 당선되었다. 전임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에서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도 없이 취임했고, 선거 바로 다음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약식 취임식을 가졌다. 겉보기에는 온갖 '진정성'이 묻어나고도 남을 만큼의 표정과 어조로 '국민 통합'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했는가? 그가 국민 통합이라는 것에는 애당초 관심조차 없었다는 걸 알아차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대대적인 '정치 보복'을 감행했다. 항간에는 약 2,000명을 수사해 200명 이상을 구속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중에 자살한 고위 인사만 5명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가히 '문화대혁명'을 상상하게 했다. 각 정부 부처별로 적폐청산위원회를 만들자고 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공무원들을 향해 "적폐 청산에 무감각하다"며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참회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19개 부처에 적폐청산 TF가 설치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2년에 즈음해 사회 원로들과의 대화를 가졌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어떤 분들은 이제는 적폐 수사는 그만하고 통합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도 한다"면서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고 또 통제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한다. 임기 절반을 도는 가운데도 적폐 수사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적폐 타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며칠 전 "저는 인생사에서 누가 저를 괴롭혔다고 보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 게 화제다. 자신도 찔리는 게 있는지 이 전 대표는 정치 보복 의사가 없다는 말을 종종 강조한다. 이날도 "그런 (정치보복과 같은) 일을 한번도 (한 적이) 없고 그런 마음도 없는데 끊임없이 '이재명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한다). 결론은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말을 믿는 사람은 잘 없는 것 같다.

지난 2022년 대선 유세에서 이재명 전 대표는 "세상에 어떤 대통령 후보가 정치 보복을 공언합니까? 하고 싶어도 꼭 숨겨 놨다가 나중에 몰래 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2016년 유튜버 김어준 앞에서 "저는 권력 행사를 잔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던 말은 자주 소환이 된다.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문재인 전 대통령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최근 그의 행적을 통해서도 많이 얘기된다. 지난 2024년 총선 때 '비명 횡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른바 비명계에 대한 '공천 학살'을 감행한 것이다. 보통 공천 갈등은 잘못하면 선거 패배로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데 당시 이재명 대표는 국민적 불쾌감이나 반감이 커져가는 가운데도 결코 멈추거나 주춤하는 바가 없이 비명계 축출을 밀고 나갔다. 서울 강북구(을)에서는 비명계 국회의원 한 명을 밀어내기 위해 후보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이렇게 하고도 성이 안 풀렸는지 바로 얼마 전에는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을 때 '비명계와 검찰이 내통했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했다. "맞춰보니까 이미 다 짜고 한 짓"이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재명 포비아'가 민주당 내에서 오히려 더 팽배하다는 말도 들린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후 방송에 나온 패널들은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된다면 적폐 청산을 앞세울지 국민 통합을 앞세울지 묻는 질문에 국민 통합을 앞세울 거라고들 했다. 적어도 상대 진영의 전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마당인데 최소한 달래는 마음에라도 통합을 위해 노력하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