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할아버지는 거의 절규하셨어요. 사람들한테 눌려서 고통스러우셨나 봐요."
직장인 선모 씨는 오전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출근길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또 다른 탑승객 김모 씨는 "압사당할까 봐 인터넷에서 본 '압사 안 당하는 자세'를 잡고 탄다"고 말했다.
출근길 9호선이 여전히 '지옥철'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9년 개통 때부터 지난해까지 운행 열차 대수를 꾸준히 늘려왔지만 혼잡 완화 효과가 크지 않아서다. 오는 2028년 9호선 4단계 구간 연장 개통을 앞두고 있어 혼잡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개통된 지 15년 넘은 지금까지도 9호선 혼잡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는 걸까.

2009년 개통된 9호선은 애초부터 '작은 노선'이었다. 1~8호선 열차가 평균이 8.7칸인 데 반해 9호선 열차는 4칸으로 출범했다. 그 근거는 2005년 한국개발연구원이 발주하고 교통개발연구원(현 한국교통연구원)이 수행한 예비타당성 조사 때문이었다. 이 조사에서 예측한 2016년 하루 최대 수요는 13만6천명이었고 2025년 수요는 14만명이었다.
하지만 개통 첫 해부터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2009년 하루 평균 수송인원은 21만4천명에 달했다. 5년 뒤인 2014년 하루 평균 수송인원은 38만4천명이었다. 2023년 하루 평균 수송인원은 62만7천명을 넘어섰다. 현재 예측 보다 4배 넘는 사람들이 9호선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예타 조사 당시 연구총괄을 맡았던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매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수요 예측에 기술업체 측의 판단도 영향을 줬다"며 "수요 예측 조합은 열차 칸수에 따라 여러 가지다. 기술업체는 4칸으로 개통 후 나중에 6칸으로 늘리는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봤고 이를 토대로 예측치를 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타 조사에 참여한 기술업체인 삼보기술단 측은 "예타 조사 보고서가 오래된 자료라 당시 담당자를 찾기 어렵다. 보고서 관리자도 현재로선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집값 폭등 풍선효과로 김포에 둥지 튼 많은 사람들
수요 예측이 빗나간 데에는 김포시 인구 급증도 한몫 했다. 김포시 인구는 1999년 15만명에서 2024년 49만명으로 늘었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간 약 7만명 정도 점진적으로 늘었지만 한강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간 늘어난 인구만 11만명이 넘는다.
이에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열차를 늘리기 위한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 급격한 수요 증가와 2015년 예정된 2단계 구간 개통에 따른 혼잡 우려 때문이었다. 9호선 사업은 1단계 개화~신논현, 2단계 신논현~종합운동장, 3단계 종합운동장~중앙보훈병원, 4단계 중앙보훈병원~고덕강일2지구역으로 계획됐다.

기재부는 "초기 차량 도입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 운영주체인 서울시가 해결할 문제"라며 거부했다. 서울시와 기재부는 여러 차례 실랑이를 벌였다. 서울시는 기재부와 합의 끝에 2015년 3월 국비 40%를 지원받아 열차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합의로 기존 4칸짜리 열차 36대로 운영되던 9호선은 4칸짜리 열차 28대와 6칸짜리 열차 17대로 확대 운영되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4칸짜리 열차는 사라졌다. 6칸 열차로만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45대로 운영되던 9호선은 지난해 3월 53대로 확대된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시기 서울 아파트값 폭등에 따른 풍선효과로 급증한 김포 인구를 감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작년 열차대수를 늘렸음에도 최고 혼잡도는 178%로 집계돼 1~8호선의 최고 혼잡도 155%보다 여전히 높은 수치를 보였다.
◇감사원 개입으로 공항철도 운행칸 축소에 맞물려 성장판 닫힌 9호선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려면 한 열차의 '칸 수'를 늘리거나 '운행횟수'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9호선을 8칸으로 늘리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9호선은 1~2단계 승강장만 8칸용으로 만들어져서다. 3단계 구간은 6칸용으로 지어졌다.
여기에는 감사원의 조치가 영향을 미쳤다. 애초 3단계 승강장도 1~2단계와 마찬가지로 8칸용으로 설계된 상태였다. 그런데 2014년 감사원이 "서울시 9호선 건설사업은 7년간 종합감사를 받지 않았다"며 시와 관련 기관을 상대로 감사를 실시했다.
이듬해 감사원은 "9호선과 직결 계획이 있는 공항철도의 8칸화가 무산된 상황에 9호선 3단계 구간을 8칸용으로 만드는 건 낭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7억원 낭비를 막는 차원에서 "9호선을 공항철도와 동일한 6칸용으로 만들어라"라고 통보했다. 시는 이를 수용했고 결과적으로 3단계부터 9호선은 6칸용으로 지어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애초 3단계 구간이 8칸용으로 설계된 건 공항철도와 맞추려고 그런 것이다. 공항철도가 8칸 도입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상황이라 9호선도 일단 6칸으로 공사하고 필요시 단계적으로 확대하라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늘어나는 승객수를 고려해 기존 4칸짜리 열차를 6칸짜리로 확대 편성하라는 통보도 함께 했다"고 덧붙였다.
9호선이 8칸으로 운행하는 게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시 도시철도과 관계자는 "3단계 구간부터 8칸으로 확대하려면 차량기지와 선로 등 인프라를 싹 다 뜯어 고쳐야 한다. 비용 대비 편익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형평성' 운운하는 서울시 탓에 계속되는 고통
칸 늘리기가 어려우면 운행횟수라도 늘려야 한다. 급행열차를 늘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2022년 2분기 기준 출근시간 혼잡도는 급행 156%, 일반 95%로 약 60%p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현재 급행열차와 일반열차의 비율은 1:1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철도과 관계자는 "일반열차 이용자와의 형평성 문제로 급행열차만 늘리는 건 어렵다"고 했다.
"출근 시간대에만 급행열차를 집중 편성하는 건 어떤가"라고 묻자 "출근시간대는 이미 열차 운행이 매우 빡빡한 상태"라며 "급행열차는 일반열차를 추월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반열차가 중간에 대피선에 정차하거나 대기하는 등 복잡한 운행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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