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가를 건설하고 산업화 도약을 이루며 북방정책으로 웅비한 저력은 화석화된 역사에 불과한가. 한국 보수정치가 몰락했다.
두 대통령이 연거푸 탄핵당한 무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를 찾지 못한다. 그 탓에 국민의힘은 이명박 정부 이후 국정을 제대로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은 사법처리 기로에 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구원하며 장렬히 산화했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조차 낼 수 없어 정치 문외한을 등용한 업보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선거를 지휘할 인물이 없어 검사 출신 한동훈을 비상대책위원장과 당 대표로 호출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대선후보 진출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 역설은 한국 보수주의 반정치(anti-politics)의 자화상이다.
비상계엄은 제도적 절제와 정치적 상상의 빈곤이 빚은 참상이다. 민주적 리더십과 수평적 당정관계가 작동했더라면 능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기득권은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연명했고 배신자 찾기 놀음으로 당을 망쳤다. 기껏해야 지역을 볼모로 기생하는 것 말고 정치적 책임윤리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누구보다 규범과 절차를 존중해야 할 보수정치가 오히려 헌정을 무너뜨렸음에도 진정한 사과조차 없다. 그리고 탄핵정국을 거치며 보수정치는 다시 광장의 태극기에 포획되었다. 이 역설도 한국 보수주의 반정치의 자화상이다.
인산인해를 이룬 태극기 대오와 40%에 육박하는 대통령 지지율은 그것이 국민여론이라는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본질은 박근혜 탄핵의 학습효과이자 윤석열 탄핵이 곧 이재명 집권이라는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나아가 대통령 탄핵심판을 헌정수호가 아닌 체제전쟁으로 오인한 결과였다.
여기에 보수 유튜버들은 대통령 직무 복귀 레퍼토리를 연출하며 탄핵심판 기각의 확증편향을 확대재생산했다. 아직도 그들은 어게인 윤(Again Yoon)과 박근혜 2.0을 외치는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보수의 가치를 절멸시키고 있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의 공동 채무자다. 4·2 재보궐선거 참패는 국민의힘을 향한 성난 민심의 파고를 예고한다. 집권당 지위에서 쫓겨난 국민의힘이 조기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윤석열을 품에 안고 반 이재명을 부르짖는 탄핵반대 후보로는 승산이 전무하다. 당내에서는 친명보다 반윤을 먼저 척결해야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대선을 내주더라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자리를 지키면 기득권이 유지된다는 반정치 프레임이 당을 괴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의 퇴장으로 양극화의 한 축이 무너졌다. 이제 다른 한 축을 무너뜨려 적대적 공생을 청산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가 정상화될 길은 요원하다. 이 과업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탄핵의 강을 건너 양극화를 청산하는 좌표 설정이다. 윤석열이 제 발로 당을 떠나 보호막을 벗을 일은 없을 듯하다. 아울러 친윤은 윤심과 탄핵반대 후보를 앞세워 적대적 공생을 연장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탄핵 찬성 후보로 중도 지지층에 소구해야 한다. 중도는 양극화 청산과 국민통합의 교두보다. 이것이 대선후보 경선에서 반정치를 정치혁신으로 전환하는 치열한 권력 투쟁이 요구되는 이유다. 탄핵 찬성 후보가 배신자라는 프레임을 깨지 못한다면 보수정치는 지역주의와 극우의 망령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다음으로 초당파적 임기 단축 개헌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즉 임기 단축 개헌을 매개로 정당 간 선거연합을 통해서 양극화 청산과 국가개혁을 대선 이슈로 추동해야 한다. 이 경우 후보 단일화로 개헌 연기 또는 반개헌 세력을 포위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반정치를 배격하고 양극화 청산을 주도한다면 제7공화국에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심판에 이어 대선심판으로 비상계엄의 늪에 매장될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져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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