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을 이렇게 쉽게 내팽개칠 줄은 몰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 진영에 맞서 자유 민주 진영을 형성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피로 맹세하던 미국과 유럽이었다. 미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 동맹국들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경제적으로 부흥시켰고, 집단 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만들어 소련의 위협을 막아냈다. 미국과 유럽은 6·25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서 함께 피를 흘리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
이처럼 80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맹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국이 유럽을 대신해 새롭게 손을 잡으려는 대상이 어제까지 공동의 적이었고, 소위 '깡패'로 불리던 건달인 러시아라는 사실이다. 유럽이 느낄 배신감과 낭패감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따지고 보면 유럽만 당한 건 아니다.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국경을 맞댄 이웃인 캐나다와 멕시코도 트럼프의 관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상호 관세, 품목 관세, 국가 관세, 2차 관세 등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관세를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난사하고 있다. 미국이 구축한 글로벌 동맹 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동맹 경시가 결국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왜 이런 선택을 할까?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미국의 전략을 가늠해 볼 작은 힌트를 제공한다.
자이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붕괴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세계 경찰국가이자 부동의 GDP(국내총생산) 1위인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는 자유 무역을 통해 성장을 이뤘다. 자유 무역의 근간은 상선이 바닷길을 안전하게 이동하고, 각국의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 가능한 방식이었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은 원유와 원자재를 수입하고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한다. 중동은 원유를 수출하고, 그 돈으로 제품을 수입한다. 이런 무역 시스템의 기반에는 경찰국가인 미국이 버티고 있기에 가능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를 누렸다. 미국이 막강한 해상력으로 보호하지 않았으면 해적들의 출몰로 자유 무역 시스템이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자이한의 주장이다.
이러는 동안 미국은 부담에 서서히 짓눌렸다. 군대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국지적 분쟁 개입 또는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자국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동맹국이 미국 시장에 무제한 진출하면서 무역 적자도 심각해졌다.
이런 와중에 셰일 가스는 미국을 최대 산유국으로 만들었다. 미국이 중동 정치에 개입할 필요성이 크게 줄었다. 중동과 유럽에서 발을 빼면서 자연스레 고립주의로 회귀한다. 미국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세계 경찰국가 노릇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환경 파괴 논란에도 셰일 가스에 목을 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일방통행식 미국 우선주의를 강요하는 배경에는 이 같은 논리가 깔려 있다.
심지어 미 국방부는 미군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러시아·북한·이란 등 다른 지역의 위협에 대해선 미군이 직접적 대응을 자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이 도발을 해도 주한미군이 나서지 않겠다는 얘기다. 유럽을 내팽개친 미국이 남한을 버리기는 더 쉬울 것이다. 우리는 대책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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