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덕 경북부 기자

최근 만난 구미의 중견기업 대표가 기자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고급 인재를 구할 수 없어요. 대기업조차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일자리와 높은 연봉이면 자연히 인재가 몰릴 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 달리, 대표가 말한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젊은 연구 인력들은 자기와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구미는 교육, 문화 등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문제예요."
이 고민은 구미만의 것이 아니다. 많은 지방 산업도시가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인재들이 살기 좋고 머물고 싶은 곳이 돼야 도시가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
이런 배경에서 구미시가 전국 최초로 '문화선도산단' 공모에 선정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문화선도산단은 단순히 공장을 재정비하거나 조경을 가꾸는 정도를 넘어, 산업단지의 성격 자체를 바꾸겠다는 도전이다.
산업통상자원부·문화체육관광부·국토교통부가 공동 주관한 이 사업에 전국 8개 도시가 참여했고, 구미는 서울과 인천, 부산 등 경쟁력 있는 도시들을 제치고 당당히 최종 선정됐다.
무려 2천705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통해, 노후화된 산업단지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의 중심은 20년간 방치된 ㈜방림 부지다. 13만㎡에 달하는 넓은 공간이 첨단산업 연구시설과 문화공간, 주거시설을 아우르는 복합 랜드마크로 탈바꿈한다.
시민과 청년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존부터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첨단 스포츠센터, 라면 스트리트, 예술 갤러리와 소극장까지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선다.
한마디로, 삭막한 회색빛 산업단지 안에 사람들의 웃음과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산업시설과 문화시설을 공존시킨다는 발상이다. 산업단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연기 뿜는 굴뚝, 회색 공장 건물, 퇴근 후 텅 빈 거리와 같은 삭막한 풍경이다.
구미의 새로운 시도는 산업단지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사람이 머무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산업단지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구체적이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한 1천700억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유치해 근로자용 오피스텔과 글로벌 브랜드 호텔도 조성된다.
산업 현장을 찾은 출장자나 근로자들이 굳이 다른 지역으로 숙박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구미의 경쟁력은 곧 '얼마나 많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머물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업이 아무리 돈을 많이 주어도 인재가 떠나면 도시는 힘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구미의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소통하고 문화를 향유할 때 비로소 변화는 완성될 수 있다. 지속적인 관리와 투자, 그리고 시민과 기업, 지자체의 유기적인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업단지는 이제 단순한 생산공간을 넘어 '삶이 있는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 산업단지에 문화를 입힌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시대적 요구이자 필연적 선택이다.
구미시의 '문화선도산단'은 단순한 도시 재생이 아닌, '산업도시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회색의 단조로움을 벗고 색다른 매력으로 거듭날 구미의 미래를 함께 기대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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