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0년 전 봄 이맘때에도 큰 산불이 발생했다. 2005년 4월 4일 강원 양양군에서 발생한 '양양 산불'이다. 불이 강풍을 타고 번진 까닭에 불을 끄러 제대로 접근조차 못 해 소실된 천년 고찰이 바로 '낙산사'였다. 20년 뒤 역시 봄날에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의성 산불'도 안타까운 천년 고찰 소실 사례를 만들었는데 바로 '고운사'다.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고운사는 그로부터 10년 뒤인 신라 신문왕 1년(681년)에 창건됐다. 둘 다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공통점을 가진 두 사찰은 안타깝게도 21세기에 화마에 의한 피해도 연달아 입었고, 이제는 낙산사를 따라 고운사도 복원에 매진할 차례가 됐다.
낙산사는 신라 원성왕 때 화재로,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조선 임진왜란 및 정조 때 화재로, 6·25전쟁, 그리고 2005년 양양 산불에 의한 피해로 거듭해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다. 고운사도 조선 헌종 때와 1970년대에 일부 건물이 소실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때 이뤄진 복원은 이번에도 당연히 전개될 전망이다.
재만 남더라도 터와 그 역사가 온전히 남는 건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도 하는 천년 고찰이 퍼뜨릴 수 있는 작은 희망이다. 그렇게 이어져야 하는 어떤 힘을 갖고 있기에 그냥 사찰이 아닌 천년 고찰이 됐을 터다. 낙산사가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관음보살을 내세우고, 고운사는 이승과 지옥의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내세우는 것도 슬픔에 빠진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콘텐츠 아닐까.
고운사 도륜 스님의 눈물도 그런 맥락이었다. 도륜 스님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천년 고찰을 이어 왔는데 우리 대에 부처님 전각을 잃어버리게 돼서 정말 죄송하다. 부처님 도량을 지키지 못한 것에 정말로 죄송하고 부처님께 참회를 드린다"면서 "산불이 빨리 진화돼 종료되기를 바라고, (고운사를) 다시 복원해 예전과 같이 기도하고 희망을 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번 산불로 인한 사망자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자들의 쾌유를 빈다. 더 이상의 피해는 없기를, 사상자 통계 작성이 멈추기를 빌고 또 빈다. 이재민들, 그리고 엄마, 아버지, 할배, 할머니, 큰아빠, 숙모가 사는 고향의 재난 소식을 전화와 뉴스로 살피며 가슴 졸이는 사람들의 마음도 하루빨리 편안해지길 바란다. 삶터와 고향이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니니, 산불이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지명을 지워 버리는 것도 아닐 것이니, 당연히 곧 뒤따를 일상 복귀로의 작은 희망을 놓지 않으시기를 기원한다.
다시 낙산사 얘기를 꺼내면, 20년 전 낙산사 전소를 계기로 시행된 문화유산 관련 '재난 방지 시설 구축 사업'의 '방염포'(방염천) 설치가 이번 산불 때 여러 문화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됐다. 고운사의 경우도 보물인 가운루와 연수전 등 여러 건물이 소실됐지만 방염포를 꽁꽁 두른 삼층석탑은 온전했다.
그 밖에도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됐던 안동 만휴정도 방염포를 둘러 소실을 면했다. 예방 조처로 안동 봉정사와 영주 부석사 등에도 방염포 처리가 이뤄졌다. 주요 유물을 분산해 이동시키는 건 지난 2022년 3월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 이후 매뉴얼을 구축해 이뤄지고 있다. 과거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어 첨단의 기술을 최대한 적용하는 이 같은 재난 방지 제도가 이번 산불을 계기로도 한층 더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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