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이정훈] '베니스의 상인'과 '법 앞의 평등'

입력 2025-03-31 13:20:36 수정 2025-03-31 14:03:35

이정훈 이정훈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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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이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슴살 1파운드를 떼어내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 때문일 것이다. 돈을 빌려 간 자는 그 돈으로 부유한 부인을 맞았다. 돈을 빌려준 고리대금업자에겐 돈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갚지 않아서 계약대로 보증 선 친구의 가슴살을 도려내기로 했는데, 돈 떼먹은 자의 부인이 판사가 돼 이런 판결을 내려버렸다.

'의문의 1패'를 당한 고리대금업자는 조롱거리로 전락하기에 이 연극은 희극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억눌렸다'는 이들을 즐겁게 하려고 법을 갖고 장난을 쳐본 것이다. 창작과 예술은 재미를 추구할 수 있지만, 사회는 정의를 기반으로 삼기에 그러면 안 된다. 평등론의 실체는 '법 앞의 평등'이고 사회는 계약으로 형성된 것(사회계약론)이기 때문이다. 악독한 고리대금업자라고 해서 법을 비상식적으로 적용해버리면 정의와 계약이 무너져 사회가 흔들릴 수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은 필자의 아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성장해 사회활동할 수 있지만, 법 앞에서 만큼은 평등해야 한다. 이를 강제하기 위해 헌법은 11조 ①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한 후 ②항에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을 박아 놓았다. 이 회장의 아들이 억울해 보이는 옥살이를 한 것은 법 앞의 평등을 엄격히 적용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 2심 판결을 받는데 909일이 걸린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공직선거법 270조는 '선거범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한다'고 한 후 1심 선고는 공소한 날로부터 6월 이내, 2심과 3심은 전심(前審) 선고 3월 이내 반드시 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6·3·3제). '반드시'라는 단어를 넣었는데도 이 대표는 송달 서류 미수령과 기일 변경 등 갖은 수를 써 1심만 2년 2개월, 2심은 4개월을 끌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인식은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해외에서 골프 치고 사진을 찍었으니 김문기 씨를 모른다고 한 것은 거짓말일 수 있지만, 모른다는 것은 인식이니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것. 여기에 2심은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을 덧붙였다. 국토부가 성남시를 특정해 백현동 부지의 용도 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세 차례 보내왔으니, 용도 변경을 해주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하면서 4단계 상향한 용도변경을 해준 것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용도변경을 해준 것을 특혜라고 유추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모른다고 한 것을 처벌할 수 없다는 1심 판결을 근거로 용도변경도 처벌할 수 없다고 한 것은 3단 논법이다. 'A는 B인데, B가 C라면, A는 C이다'란 3단논법은 쉽게 궤변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소크라테스다'란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논법이 궤변이 아니 되려면 분류를 제대로 해야 한다. 필자와 소크라테스는 개인이고 사람은 전체이니, 전체와 개인을 따로 봐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필자는 사람인데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필자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란 바른 답이 나온다.

국토부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야 하는 다른 지자체에도 국가균형발전법을 근거로 용도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를 받은 지자체들은 성남시와 달리 4단계 상향하는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특혜가 되기 때문이다. 성남시가 4단계 상향한 용도변경을 해줄 때 개입한 김인섭 씨는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렇다면 4단계 상향 용도변경은 보통의 용도변경과 다른 분류를 해야 하는데, 2심은 같은 것으로 '유추'했다.

이것이 궤변이기에 김문기 씨와 찍은 사진은 특정 부분을 확대하는 조작을 했으니 증거로 볼 수 없다며 실체적 진실까지 부정하는 설명을 덧붙였다. 헌법에도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인 '법 앞의 평등'을 물론 공직선거법을 지키지 않은 법원이 유추해석금지를 근거로 유추를 하니, 돈 떼먹은 자의 부인이 판사가 돼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을 베어내라는 명판결을 한 희대의 코미디(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