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매체와 정객(政客)들이 예측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彈劾) 선고일이 모두 빗나가고, 탄핵 찬반을 둘러싼 정쟁(政爭)과 시위로 시국이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작년 말 "다른 탄핵 사건보다 대통령 탄핵 사건이 시급하므로 그것을 가장 먼저 처리하겠다"라고 한 헌법재판관의 공언(公言)은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대규모 집회로 세를 과시하는 것은 이제 뉴스거리도 못 되고, 삭발에 단식까지 줄을 잇는 등 이래저래 위태위태한 형국이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牧民心書)' 형전(刑典) 청송(聽訟) 조(條)에서 재판관의 무능력이 야기(惹起)한 한심한 작태를 이렇게 비판하였다.
"무릇 송사(訟事)하는 한쪽의 말이 비록 놀랄 만해도 한쪽 말만 믿으면 안 되며,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을 절대로 논란하지 말고 판결문에 '양쪽이 각기 전후(前後)의 문서를 가지고 와서 서로 대질하라'라고만 쓰고 다시 한 글자라도 더 써넣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언제나 보건대, 미숙한 목민관(牧民官)은 갑(甲)이 호소하면 갑이 선(善)하다고 여겨 장황하게 변론하여 을(乙)이 악(惡)하다 하고, 반대로 을이 호소하면 을이 선하다고 여긴 나머지 이전의 소견을 모두 뒤엎고 갑을 무고(誣告)로 판정하여 두세 번 번복하고 조석(朝夕)으로 고쳐 댄다. 그리하여 '숙녹피(熟鹿皮)'니 '노섬저(怒蟾觝)'니 하는 조롱이 경내에 자자하니, 이것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숙녹피(熟鹿皮)'의 원 의미는 가죽 중에서도 부드러운 사슴 가죽을 잘 무두질하여 더욱 부드럽게 만든 것이지만, '녹비에 가로왈 자'(鹿皮曰字)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인다. 부드럽게 무두질한 사슴 가죽에 쓴 '曰' 자는 그 가죽을 가로로 잡아당기면 '曰'(왈) 자가 되지만, 세로로 잡아당기면 '日'(일) 자가 된다.
'숙녹피'의 좀 더 분명한 표현은 '숙녹피대전(熟鹿皮大典)'이다. 이 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간간이 보이는데, 법전(法典)을 숙녹피 잡아당기듯 재판관이 주견(主見) 없이 판정을 번복하거나 법조문을 임의대로 해석하는 것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또 '노섬저(怒蟾觝)'는 '성낸 두꺼비의 씨름'이라는 의미로, 우리 속담에 "두꺼비의 씨름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라는 것이다. 이는 힘이 비등(比等)하여 서로 다투어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비유적 표현이니, 재판관이 판결을 분명히 하지 못해 다툼의 시비가 결말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제각기 사슴 가죽을 잡아당기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시비를 다투는 모습은 잔뜩 성이 나서 몸통을 부풀린 두꺼비가 씨름하는 것 같다. 이번 탄핵 심판과 관련하여 '국민적 정서' 혹은 '법 감정'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정서' '감정'과 '법'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법률적 판단은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식하에 큰 거부감 없이 쓰이고 있다. 그래서 시민은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광장으로 몰려든다.
최종적으로 동일하게 보이는 사건이라도 일률적으로 판정할 수 없기에 재판관이 존재하며, AI가 각종 직군(職群)을 잠식하고 있지만 그것이 재판관을 대체하는 일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선고 지연 사태는 각종 의혹을 만들고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은 결코 '숙녹피대전(熟鹿皮大典)'이 아니다.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한 총리 탄핵 기각에 "국민이 납득할지 모르겠다"
'국회의원 총사퇴·재선거' 제안한 이언주…與, 릴레이 지지
민주당, 韓 복귀 하루만에 재탄핵?…"마은혁 임명 안하면 파면"
홍준표 "탄핵 기각되면 대구시장 계속…역점적으로 사업 추진"
"불타버린 삶, 이제 어디로"… 의성산불 이재민들, 무너진 일상에 눈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