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 가보니…주차 차단봉 부서지고 보차도 분리 장치 없어
2021년~2023년 대구 구군별 스쿨존 교통사고, 달서구서 최다 48건 발생
"이면도로 많은 보육시설 특성상 안전시설 설치 시급"

21일 대구 달서구 진천동에서 발생한 어린이보호구역(이하 스쿨존) 초등학생 사망사고 현장은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골목의 이면도로였다. 사고 현장처럼 대구 곳곳에 아동 보호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스쿨존이 적잖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당장 다음주 새학기를 앞둔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매일신문 취재진이 사고지점과 스쿨존 곳곳을 찾아 현장 실태를 살펴봤다.
◆사고 현장 가보니…'어린이보호구역' 무색
25일 오전 사고가 발생한 달서구의 한 공원에 가봤다. 이곳은 유치원이 인근에 있어 인근 도로가 스쿨존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스쿨존은 빨간 미럼방지 페인트에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이면도로와 다르지 않아보였다. 오히려 더 위험해보이는 부분도 적잖았다.
사고지점은 좌·우회전 차량이 들어오고 나가는 T자형 도로였다. 도로가 꺾이는 곳에 설치된 주차차단봉은 일부가 부서져버려 바닥에 동그란 흔적만 남아있었다. 이곳 위로 주차된 차도 있어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시야 확보가 어려워보였다.
이곳은 주차차단봉과 공원 입구 앞 석재 볼라드를 제외하면 도로와 인도를 분리할 안전장치가 전무했다. 공원 입구 앞 도로에는 과속방지턱이 설치돼 있었는데, 방지턱 위에는 지난 21일 있었던 초등생 스쿨존 교통사고 흔적이 아직까지 선명히 남아있었다.
공원 앞에 붙은 주정차금지 팻말이 무색하게 이면도로 옆에 설치된 주차차단봉 앞뒤로 차가 빽빽이 주차돼 있었다. 불법 주정차로 교행이 불가능해지자 차들은 전봇대 사이 공간에 잠시 멈춰선 뒤 옆 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인근 주민 이모(64) 씨는 불법 주정차가 없었다면 도로에서 넘어진 아이가 보였을 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씨는 "옛날 아파트나 빌라가 모여 있는 곳이라 놀이터가 없어서 아이들이 이 공원에 와서 많이 논다"며 "유치원이나 학교 끝나면 공원에서 술래잡기 하고 놀다가 꼭 도로 쪽으로 튀어나가더라.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 공원에 펜스를 둘러 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치된 어린이집‧유치원 안전
25일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2021~2023년 대구에서 발생한 스쿨존 교통사고 중 만 12세 이하 아동이 피해자인 사례는 모두 88건이다. 이중 달서구에서 발생한 사고가 48건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겼는데 특히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등학교가 밀집한 월성동에서만 11건이 집중됐다. 이 외에 북구와 수성구도 각각 10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아동 스쿨존 사고의 경우 일반적인 교통사고에 비해 위험성도 높았다. 아동 스쿨존 사고 88건 중 중상사고로 이어진 경우가 14건으로 전체의 15.9%를 차지했다. 일반 교통사고의 경우 중상과 사망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7%대인 점을 감안하면 유독 높은 수치다.
사고 원인은 안전운전불이행이 전체 88건 중 40건(45.5%)으로 전체 유형 중 가장 많았다. 보행자보호의무위반 사례가 28건(31.8%), 신호위반 9건(10.2%)으로 뒤를 이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로 방치된 스쿨존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하 대구안실련)의 '대구 유치원·어린이집 스쿨존 전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보육시설 스쿨존 311곳 중 어린이들이 등·하원 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설치하는 도로반사경이 없는 곳이 152곳(51%)이었다. 불법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미설치된 곳은 260곳(88%)으로 조사됐다.
이 외에 시속 30㎞ 이하 속도제한 표지판이 설치되지 않거나 부실한 곳은 전체에서 49곳(16%)이었고, 미끄럼방지시설이 탈색된 채 방치한 곳은 37곳(13%), 설치조차 하지 않은 곳은 24곳(7%)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 "현행 제도 개선 필요"
지역 전문가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초등학교에 비해 주택가의 좁은 도로나 상가 이면도로에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보행 안전시설 설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중진 대구안실련 공동대표는 "유치원·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은 위치 자체가 교통사고 사각지대라고 불릴 수 있는 경사진 언덕길, 골목 쪽에 많이 분포돼있기 때문에 단순히 스쿨존을 지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만큼 안전 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며 "특히 운전자들이 초등학교는 스쿨존이 있다는 인식이 높은데, 보육시설에도 스쿨존이 있는지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계도활동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스쿨존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시각이 늦은 오후 시간대인 것을 감안해, 시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스쿨존에 조명 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성수 한국교통안전공단 대구경북본부 교수는 "사고 시간대가 오후 6시를 조금 넘었는데, 큰 도로보다 이면도로는 빛이 막혀서 훨씬 어두울 수 있다"며 "길을 밝힐 수 있는 조명시설을 늘리는 한편 가로등에는 어린이가 갑자기 나올 수 있다는 안내 표식도 붙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법주정차 단속 활동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우석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이면도로나 가로변에 불법주정차가 있었다는 게 교통사고의 가장 큰 문제다. 불법 주정차로 도로 옆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키가 작은 아이들이 차 사이로 튀어나오면 운전자도 대응을 하기가 어려워서 큰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며 "경찰이 스쿨존에서 불시 단속을 하는 등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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