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한동훈 전 대표 정치 활동 재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책 '국민이 먼저입니다' 출간과 함께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 지난 해 12월 16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두 달여 만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 해 4·10 총선 패배 후인 4월 16일 "내가 부족했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아내 고치고, 힘내자"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두 달이 남짓 지난 6월 23일 "지지자들이 국민의힘이 소수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지리멸렬하고 끌려다닐까 걱정한다. 제가 이 난국을 타개하는 구심점이 되겠다"며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 7·23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번에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하면 국민의힘에 안착하고, 대권주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 삼국지 유비가 유봉을 죽인 까닭
유봉(劉封·본명 구봉: ~220)은 중국 후한말 유비(삼국지 주인공) 휘하의 장수였다. 일기당천(一騎當千)급 장수는 아니었지만 유비의 눈에 띄어 양자(養子)가 되었다. 유비가 유봉에게 익주와 형주를 잇는 요충지이자,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수도 있는 상용(上庸·촉나라와 위나라의 국경 지대)을 맡긴 것도 그만큼 그의 충심과 용맹을 믿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가 오나라 여몽의 책략에 말려 형주를 빼앗기고 맥성(麥城)으로 퇴각했다. 하지만 맥성까지 오나라 군대가 추격해왔고 다급했던 관우는 가까운 상용(上庸·유봉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전령(傳令)을 보내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봉은 이렇게 거절했다.
"상용은 우리가 새롭게 점령한 땅이고, 최전방이어서 함부로 병력을 빼낼 수 없다."
전령이 "지금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관공(관우)은 전사하십니다"며 이마를 땅에 찧으며 호소했으나 유봉은 거절했다. 지원군이 오지 않자 관우는 익주로 탈주하기 위해 맥성을 빠져나오다가 오나라 군사들에게 잡혀 처형됐다.
이 사실을 들은 유비는 분노했다. 나중에 잘못을 깨달은 유봉은 잘못을 만회하고자 적들과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패했고, 성도(成都·삼국시대 촉나라 수도)로 후퇴했다. 유봉이 성도로 들어오자 유비는 "무슨 낯으로 나를 보러 왔느냐?"며 자결을 명했다.
▶ 한동훈의 윤 대통령 배신, 왜?
한동훈 전 대표는 삼국지의 유봉과 같은 처지에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 대다수는 의형제 관우를 잃은 유비의 심정으로 한동훈 전 대표를 바라본다.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4·10 총선을 이끌던 때는 물론이고, 국민의힘 대표가 되어서도 윤석열 대통령을 돕기는커녕 흔들었고,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에 동조했고, 대통령 탄핵에도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운 명분은 '나는 국민 편이고, 내가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대한민국과 국민뿐이다'였다. 그 이면에는 '윤석열이 키운 한동훈' '윤석열 아바타' 라는 대중의 인식을 깨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본다. '검사 출신 대통령 윤석열'에 이어 또 '검사 출신 대통령 한동훈'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작정하고 윤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한동훈 전 대표가 '국민의 눈높이' '쇄신'이라는 명분으로 윤 대통령과 차별화 및 대권을 향한 포석을 다지는 과정에서 불협화음(4·10 총선 당시 한동훈의 공천 주도, 총선 패배 후 곧 당 대표 도전, 대통령실 쇄신 요구 등)이 계속 이어졌다. 그 와중에 야당의 국정 마비 시도가 극심해지자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국회에서 탄핵소추되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 이상으로 한 전 대표에게 대통령 탄핵소추 책임이 있다고 본다.
▶ 입체적 문제를 평면으로 이해
한동훈 전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를 밀어붙인 것에 대해 "상황을 정상으로 빨리 되돌리기 위해서는 탄핵 가결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탄핵으로 마음 아프신 지지자 분들께 많이 죄송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삼국지의 유봉이 "내가 배신하지 않아야 할 사람은 아버지 유비뿐이다. 나는 아버지의 영토 '상용'을 지키기 위해 관우를 돕지 않았다. 의형제인 관공을 잃어 마음 아프신 아버지께 많이 죄송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유비는 어떤 심정일까?
유비는 요충지 상용을 잃더라도 관우를 구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설령 상용을 잃더라도 관우가 살아 있으면 되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관우를 잃는다는 것은 상용도 잃고 나라도 망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유비를 '대의를 모르고 의리에 함몰된 인간'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지지층이 윤 대통령을 지키려는 것은 단순히 '개인 윤석열'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지지층에게 '윤 대통령 탄핵=대한민국 정체성 탄핵' '윤 대통령 배신=보수우파 배신'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필자는 그가 보수우파가 아니기에 보수우파의 우려와 한(恨)을 모른다고 본다.
▶ 꼬임에 빠진 유봉, 한동훈은?
유봉이 위기에 빠진 관우를 돕지 않은 데에는 상용(上庸)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 외에 주변의 잘못된 조언도 한몫을 했다. '유봉, 자네가 관우를 숙부로 대접한들, 친조카가 아닌데 관우가 자네를 친조카처럼 여기겠는가. 유비에게는 유선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관우가 자네를 돕겠는가?'
한동훈 전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에 적극 나서는 과정에서도 반간계(反間計) 또는 잘못된 조언이 있지 않았을까? 체포설·사살설 같은 공작이나 '별의 순간' 같은 꼬드김 말이다.
▶ 복귀해도 안개 속 헤매는 낭인
한동훈 전 대표는 정치 활동을 재개해도 천운(天運)이 닿지 않는 안개 속을 헤매는 한 낭인(浪人)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작금의 상황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한 전 대표는 무성한 잎이었고, 윤 대통령은 줄기, 보수우파 국민은 뿌리다. 스스로 줄기를 버렸으니 잎이 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게다가 한 전 대표는 '정답'이 없거나, 상황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는 문제에 취약한 것 같다. '쇄신=성공' '계엄 선포=탄핵감'이라는 식의 평면적 사고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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