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전 고용노동부장관
오늘(2월 28일)은 대구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65년 전 대구의 8개 고교 학생들은 자유당 독재에 항거해 시위를 벌였다. 이는 6·25전쟁 이후 한반도 최초의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되며,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 성장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경제 발전과 민주적 시민의식은 민주주의 회복탄력성의 굳건한 토대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양극화와 이중구조로 인해 중산층이 붕괴되고,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 고용 불안과 서민 생계 악화가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제는 무엇일까? 핵심은 양극화와 이중구조를 완화해 중산층을 복원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또한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중장년층의 계속 고용을 통해 서민들의 민생 안정을 기하는 일이다.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개혁은 노사 법치에 기초해 상식과 공정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세대·지역·노사를 아우르는 상생과 연대의 산업·노동 생태계를 만들어 양극화와 이중구조를 개선하며, 약자 보호와 민주주의 공고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었다. 노사 현안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고,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편해 삶의 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취지다.
핵심은 임금체계와 노동시간 시스템의 공정성과 유연 안정성을 높여 고용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세대 간 상생을 이루는 것이다. 현재의 노동시간·임금 시스템은 고도성장기 제조업 중심 경제에 적합하지만, 디지털 경제와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1953년 6·25전쟁 직후 제정된 노동법의 골간을 그대로 유지한 채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적절한 노사 대응을 기대할 수 없다.
임금체계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능력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부족하고, 연공과 근속 중심의 임금 구조로 인해 중장년층의 계속 고용이 어렵다. 내부자를 보호하는 반면 신규 입사자의 진입 장벽이 높고, 규모와 고용 형태 간 격차도 심하다.
노동시간 선택의 자유도 부족하며, 경직적이고 획일적인 구조다. 이런 시스템은 결국 고용 불안과 경쟁력 악화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문제들은 노사정이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었지만,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통상임금 범위 판결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통상임금 문제는 지난 2013년 5월 방미 중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GM 회장이 한국 투자의 조건으로 민원을 제기해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내용이다. 입법적 불비로 인한 노사 갈등과 소송으로 인한 사법 리스크로 불확실성을 낳는 대표적 사례이다. 대법원이 11년 전 판결을 변경함으로써 향후 부담 증가로 인한 노사 간 마찰이 예상된다.
중장년층 계속 고용을 위한 사회적 대화는 탄핵 정국으로 중단되었다. 청년 고용 문제도 심각하다. 2003년 조사에서 15~29세 청년 인구 중 '쉬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3%(24만 명)였으나, 2023년 2월에는 5.9%(49만7천 명)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등락을 거듭했으나 엔데믹 이후에도 예상과 달리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고령층(60세 이상)과 핵심 연령층(35~59세)의 '쉬었다' 비중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반면 청년층은 팬데믹 이후 급증했다. 지난해 8월에는 46만 명으로 2023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실업률이 낮고 전반적인 노동시장 상황이 양호한데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경제성장 전망은 1.6~1.7%로 암울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글로벌 관세 전쟁 등 대내외 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가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노사 간 신뢰와 협력이 중요하다.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고통 분담도 요구된다.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인 청년들을 위해 노동개혁도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를 넘어 대안을 찾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과거 대구민주화운동이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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