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사람들은 좋아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보다는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트리기 위해 투표한다. 내가 싫어하는 '놈'이 잘되는 꼴은 못 본다는 심리는 강하고 질기다.
진화적 관점에서 증오는 위협에 재빨리 반응케 하는 기제(機制)라는 이론도 있다. 이 이론이 맞는다면 선거 전략은 단순하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 된다. 우리 후보의 장점을 부각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상대 후보가 싫어서 투표하면 누가 이기든 차이가 박빙(薄氷)이다. 기껏해야 몇십만 표 차로 대통령이 선출된다. 득표율 60% 또는 70%로 당선되는 대통령을 기대할 수 없다. 임기 시작부터 국민의 절반은 대통령에게 적대적이다. 선거가 끝나야 비로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시작된다. 애써 외면했던 단점들이 하나씩 보인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통령을 비난한다.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 중 일부도 등을 돌린다. 이래저래 지지율이 떨어진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윤석열, 이재명 후보의 자질을 평가하지 않고 두 사람의 약점에 몰두했다. 누군가 윤석열 후보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돼야 한단 말인가?"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비판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자는 건가?"라는 반박에 묻혔다. 누군가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럴 줄 몰랐다고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알고도 투표했다.
모든 사람은 공과(功過)가 있다. 공이 과보다 큰 사람은 좋은 사람, 과가 공보다 큰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공이 51, 과가 49인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공이 70, 과가 30인 사람은 아주 좋은 사람이다. 맨더빌(Mandeville)의 말마따나 누구에게도 해(害) 될 것이 없을 만큼 좋은 것도,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 나쁜 것도 없다. 완전무결한 대통령 후보는 없다. 상대적으로 나은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중도우파' '중도좌파'라는 단어가 있다. '중도우파'는 정치 성향이 약간 오른쪽인 것을, '중도좌파'는 약간 왼쪽인 것을 의미한다. 숫자로 나타내면 가운데가 50, '중도우파'는 60~70, '중도좌파'는 30~40이다. 중도적인 대통령 후보는 좌우 극단을 오가지 않는다. 그래서 불확실성이 작고 예측도 가능하다. 중도적인 후보가 극단적인 후보보다 낫다. 중도적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회적 갈등이 적어서 정치적 보복도 사라진다.
대통령은 리더(leader)다. 대표적인 리더 유형은 두 가지다. '카리스마적' 리더는 자신의 매력과 영감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나 불안정하다. 반면 '거래적' 리더는 상벌(賞罰)을 중시한다. 개인적 매력은 없지만 안정적이다. 우리 국민은 '카리스마적' 리더를 좋아한다. '거래적' 리더는 인기가 없다. 중도적인 후보는 '거래적' 리더에 가깝다. 중도적인 후보가 당선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1884년 영국 런던에서 온건한 사회주의자들이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를 만들었다. '페이비언'은 로마의 장군 파비우스(Fabius)에서 유래했다. 그는 전면적인 충돌을 피하고 지속적인 압박으로 한니발(Hannibal)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때부터 '페이비언'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또한 '페이비언'은 급진적, 폭력적 혁명보다는 점진적, 실용적 개혁을 지향하는 정치인을 뜻하기도 한다.
'페이비언'은 '중도좌파'다. 좌파라고 하면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놀라지 마시라. '페이비언'은 온건한 좌파다. 현실에서 순수한 우파나 좌파 정책은 없다. 진부한 용어지만 혼합경제, 수정자본주의는 '페이비언'의 유산(遺産)이다.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된 소득재분배, 사회안전망 구축, 철도·전기·가스 공영화는 '페이비언'의 강령(綱領)이었다.
유학 시절 내가 살았던 지역은 겨울이 길고 추웠다. 전기료를 아끼려고 아침에 집에서 나갈 때 실내 온도를 18℃로 해 두었다가 돌아와서 25℃로 높였다. 그러나 집은 따뜻하지 않았고 전기료만 많이 나왔다.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요즘 나는 집에서 나갈 때 내 방 온도를 20℃로 설정했다가 돌아와서 22도로 높인다. 예전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가지 않는다. 살다 보면 미지근하거나 어중간한 것이 좋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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