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졸업 철이다. 졸업장과 함께 상장도 수여되는데, 그 문구의 전형(典刑)은 "위 사람은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하여 모범이 되므로 이에 상장을 수여함"이니, 근대 전환기 일본에서 쓰이던 상장(賞狀)의 문구가 식민지였던 조선·타이완으로 그들의 교육 제도와 함께 이식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학교에서 발급된 상장에 "賞狀. 右者品行方正學業優等ニ付賞品ヲ授與ツ玆ニ之シ表彰ス"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그 의미는 "상장. 위 사람의 품행 방정과 학업 우등에 대하여 상품을 수여하고 이에 그를 표창함"이다. 이것은 일제(日帝)의 잔재(殘滓)가 분명하지만, 딱히 시비를 따질 만한 내용도 아니기에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 물론 이제라도 그 친숙한 문구가 일제의 잔재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 누구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방정(方正)'은 '언행이 바르고 점잖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원뜻은 '모가 나고 바르다'이다. 방정이 품성의 한 가지가 된 사례는 중국 전국시대의 '관자'(管子)에서 왕의 처신과 솔선수범(率先垂範)을 논하면서 "왕의 신행(身行)이 방정(方正)하고"라고 한 말에서 보인다. 그리고 한나라 때 '현량(賢良)하고 방정(方正)하여 직언(直言)과 극간(極諫·끝까지 간언함)할 수 있는 자'를 천거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당나라 때 '현랑방정직언극간과(賢良方正直言極諫科)'로, 청나라 때 '효렴방정과(孝廉方正科)'로 계승되었으니,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른 말을 끝까지 할 수 있는 방정한 사람을 관료로 선발하기 위한 국가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조선도 중종 때 현량방정과로도 불리는 현량과를 설치하여 현인을 뽑아 이상적 정치를 실현하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기득권을 잡고 있던 훈구(勳舊) 세력이 현량과로 선발된 신진 사류(士流)를 제거하려고 일으킨 사화(士禍)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는 "성격이 너그럽지 못하면 대인 관계가 원만할 수 없다"는 의미와 "너무 뛰어난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기 쉽다"는 다소 다른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그러나 그 의미가 어떻든 중종 때 이념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렵게 모아들인 인재들이 도륙(屠戮)되고 현량과가 폐지되었으니,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위한 격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서는 방정한 위인이 끊임없이 나왔고 그들의 끝은 대개 좋지 못하였다. 그들의 방정한 행동은 목숨 바쳐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었고,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 역사와 사회가 진전할 수 있었다.
방정은 개인의 희생이 수반되기에, '원만(圓滿)히 살라'고 가정에서 가르치고, 직장에서 강조하며, 학교에서도 '원만한 관계 형성'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물론 교육과정에서 기술하고 있는 '원만'이 사회관계에서 말하는 그것과 함의는 다르다. 교육과정에 '원만'이라는 말이 있지만, 상장에는 그 말이 들어가지 않고, 상장에는 '방정'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교육과정에는 그 말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따라야 하는 걸까?
'한비자' 공명(功名) 편에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왼손으로 네모를 그린다면, 양쪽 모두 완성할 수 없다"라는 말이 해법이 될 수도 있겠다. 결코 한 사람이 동시에 동그라미와 네모를 그릴 수는 없다. 내가 동그라미를 그리면, 다른 사람이 네모를 그리도록 해야 한다. 다만 원만과 방정이 필요한 각각의 영역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지 그 둘을 착종(錯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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