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장우영] 심판대 위의 헌법재판소

입력 2025-02-12 11:47:16 수정 2025-02-12 16:14:04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헌법재판소는 헌법 해석과 권력 행사 통제의 최종적 권위다. 헌재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헌성과 탄핵, 정당 해산, 권한쟁의, 헌법소원의 일체 심판을 관장한다. 이 권위의 결정으로 수도 이전을 불허했고, 통합진보당을 해산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부럽지 않은 권한이다.

이처럼 선출되지 않은 집단이 삼권분립의 주축이 되어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리를 곡해하고 양심을 내버려도 판결은 최종적 권위이므로 누구든 승복해야 한다. 더욱이 헌재 판결은 단심제여서 한 번 내려진 결정은 돌이킬 수 없다. 이 결정적 약점 때문에 헌법재판에서 절차적 정의는 공동체의 생명선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돌입한 지 한 달여 만에 오히려 헌재가 심판대 위에 올랐다. 국민의 40% 이상이 헌재와 탄핵심판을 불신한다는 여론조사(2월 6일 NBS, 여론조사 공정)가 잇달아 발표되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탄핵 국민동의 청원이 16만 명을 바라보고, 이미선 정계선 헌법재판관 청원도 10만 명 앞뒤에 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청문회를 강행한 정청래 법제사법위원회가 이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지 지켜볼 일이다. 장외의 여론도 대통령 탄핵 찬반에서 헌재 존폐 찬반으로 확전되고 있다.

헌재의 위기는 절차의 불합리성과 정파성 시비에서 비롯되었다. 무엇보다 절차적 불합리가 매우 심각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시 필요한 정족수(200명)로 탄핵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우원식 국회의장은 자의적으로 국회 의결정족수를 150명으로 정하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했다.

어떤 미개한 나라가 국회 과반수 의결로 국정 책임자의 직무를 정지시키는지 궁금하다. 더욱이 국회 탄핵소추인단이 한 대행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정당성에도 금이 갔다. 헌재는 이러한 반의회주의에 동조하는 것인지 한 대행 탄핵심판을 미루고 있다.

만약 한 대행 탄핵이 기각되면 국정의 책임자가 바뀌고 최상목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도 위법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한 대행 탄핵심판을 속행하여 국정 난맥상을 바로잡는 것이 최우선이다.

우 의장은 최 대행을 상대로 '국회를 대표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간 분쟁 해결 제도다. 그런데 국회 본회의 의결 없이 멋대로 '국회를 참칭하는' 반의회주의가 망동하고 있는 것이다. 헌재는 하자가 명백한 이 심판도 각하하지 않고 선고를 연기했다. 오히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권한쟁의나 헌법소원이 인용됐는데, 이를 따르지 않으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논란을 부추겼다. 이런 행태가 거듭되면 헌재 스스로 사법을 정치화한다는 오명을 남길 것이다.

탄핵심판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비상계엄과 내란죄에 대하여 적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헌재법(제38조)은 심판 기간을 180일 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필요 충분한 심리를 통해 헌법의 지배를 구현하는 것이 헌재의 소명이다. 증인들의 진술도 바뀌고 있어 진실을 규명하는 시간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헌재의 속도전은 이재명 대표의 재판 일정과 맞물려 졸속 탄핵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이 문 대행과 이 대표의 친분설이 떠도는 데다 세 명의 헌법재판관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점이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까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의혹을 키우고 있다. 따라서 탄핵심판 과정의 신뢰성을 높여 정파성 시비를 불식시키려는 자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공정한 대통령 탄핵심판에 국가와 민주주의의 명운이 달려 있다. 불합리한 절차는 탄핵심판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킬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비판 여론을 탓할 것이 아니라 절차적 흠결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식의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법과 양심만 따라가야 한다.

속도가 아니라 원칙을, 형식이 아니라 절차를 지키는 것이 탄핵심판의 관건이다. 그래야 이 나라 헌정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