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서명수] 정치 도구가 된 헌법재판소

입력 2025-02-05 05:00:00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법원 판결에 불복한 시민들이 법원을 휩쓴 사법사상 초유의 서울서부지법 사태가 벌어졌고 판사들의 신상과 정치 성향도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법원은 물론이고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堡壘)라는 헌법재판소마저 진영(陣營) 대결의 장으로 변했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마지노선이다. 계엄·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일부 법관들의 법치 농락 행태는 우리 사법 시스템이 자칫 중국의 사법 시스템으로 가는 듯한 섬뜩함을 자아낸다. 중국에서는 '최고인민법원'을 비롯한 사법 체계를 당이 지도하고 있다. 사법부는 당의 하부 기관일 뿐이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정권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우리법'과 '국제법' 출신들을 대거 법원 요직에 앉혔고 '법원장추천제'를 통해 재판 지연을 일상화했다. 사법 정의는 불가능해졌고 사법 농단(壟斷)이 노골화됐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판사는 대장동과 위증교사 혐의 등으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해 범죄 혐의가 소명된다면서도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판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사법부의 영장 발부와 판결은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심각하게 의심케 한다.

이재명과 조국 등 야당 정치인은 '완행 열차' 재판을 하면서 현직 대통령은 'KTX 재판'을 한다면 사법부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형사 재판이나 탄핵 재판 모두 재판부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하되, 피고인과 피청구인의 방어권을 철저하게 보장해야 한다. 재판 절차가 공정하지 않게 보인다면 공정하게 보이도록 노력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법관의 2촌 이내 친족이 변호사로 근무할 경우 해당 법무법인이 맡은 사건은 처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권고 의견 8호로 의결한 바 있다. 대법원 규칙 '법관 사무분담·사건배당 예규' 제14조는 법관과 개인적인 연고(緣故)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될 경우 재판장은 사건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19년 10월 가습기 살균제 재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에서 23부로 재배당됐다. 재판이 5개월여 진행되다가 피고 측이 27부 재판장이던 당시 정계선 판사 배우자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를 한 '사회적참사특위'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을 문제 삼아 법관기피신청을 내자 서울중앙지법이 재배당을 한 것이다.

헌재는 재판관들의 탄핵심판 기피(忌避) 사유가 심각함에도 재판관 스스로 회피하지도 않고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겠다"며 헌재만 믿으라고 허공에 외치고 있다. 최고 헌법기관의 신뢰성을 스스로 망가뜨려 놓고 "문제가 없다"고 우긴다. 1987년 체제의 산물인 헌재의 존폐(存廢)는 이제 공론의 장에 올랐다. 공수처법도 지키지 않는 공수처는 물론 정치 도구가 된 헌재도 폐지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법관윤리강령 제1조가 명시한 사법권의 독립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헌재 공보관은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공언했다. 법과 양심이 아니라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것은 중국처럼 인민재판, 여론재판을 하겠다는 뜻인가?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dider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