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산업 침공] 딥시크 이면에 반도체 발전…메모리 '치킨게임' 위협도

입력 2025-02-04 18:30:00 수정 2025-02-04 20:57:36

중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생성형AI 딥시크 실행화면. 연합뉴스
중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생성형AI 딥시크 실행화면. 연합뉴스

중국 산업계의 전방위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 '산업의 쌀' 반도체도 예외는 아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 정부가 반도체 수출 통제의 수위를 높이면서 중국도 반도체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첨단산업 발전의 필수 요소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딥시크 돌풍 이면에 반도체?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장기간 지속된 미국의 제재에도 고성능 인공지능(AI)을 선보이면서 세계 경제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의 수출통제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반도체 장비 수입은 오히려 늘었다는 분석도 나와 눈길을 끈다. 무역안보관리원은 최근 발간한 '트레이드 앤 시큐리티'(Trade & Security) 학술지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반도체 수출통제 개편이 중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급에 미친 영향' 논문을 게재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2022년 10월 대대적인 대중국 수출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도체 생산기업 판매가 전격 금지됐고, AI 및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칩에 대한 대중국 수출도 제한됐다.

미국 정부는 이듬해 10월 수출 금지 품목을 저사양 AI칩으로 확대하고 제재 우회 차단을 위해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내놨고, 이 같은 조치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부문 세계 1위 업체인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와 일본도 동참했다.

주요 반도체 장비기업 대중 무역제재 전후 중국 수출 관련 매출 추이. 무역안보관리원 제공
주요 반도체 장비기업 대중 무역제재 전후 중국 수출 관련 매출 추이. 무역안보관리원 제공

하지만 무역안보관리원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에 대해 "현행 반도체 수출통제 체제에서는 중국으로 고수준 장비가 수출되는 것을 온전히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를 내놨다.

특히 그 근거로 수출통제에도 글로벌 주요 반도체 제조 장비 기업의 대중국 매출 비중이 늘고, 중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액이 늘어난 것을 들었다.

반도체 건식 식각 분야 전문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의 대중국 매출 비중은 2022년 20∼25% 수준에 머물렀으나 2023년 30∼40%로 상승한 뒤 2024년 45% 이상으로 급증했다. 또 ASML의 대중국 매출 비중 역시 2022년 1분기 35%에 육박하다가 4분기 10% 수준으로 떨어지며 수출통제 영향을 받는 듯했으나 2023년 40% 중반으로 수직상승한 뒤 2024년에는 50%에 육박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KLA의 경우 2022년 수출통제를 거치며 대중국 매출 비중이 20∼30% 초반에서 40%대로 올랐고, 식각 장비 전문기업 램리서치의 대중국 매출 비중은 30%대에서 수출통제 직후 20%대로 단기적으로 하락했으나 이후 40%대로 급상승했다.

이와 함께 수출통제 전인 2022년 1∼9월 중국의 월평균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액은 31억달러 수준이었는데, 2024년 1∼9월에는 39억6천만달러로 27.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전체 전공정 장비 수입액의 10% 수준을 오르내리던 노광장비 수입액이 2023년 25% 이상으로 급증하고, 중국의 패키징 장비 수입이 줄어든 점을 들어 "중국 반도체 산업 내 구조 변화가 단기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출통제에 동참한 네덜란드의 경우 중국의 전체 전공정 장비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11%에 불과했으나 2023년 23%로 급성장했다. 일본의 경우 이 비중이 27.6%에서 24.4%로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중국에 있어서 가장 큰 반도체 전공정 장비 수입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연구원은 지적했다. 또 중국이 국산화를 통해 반도체 제조 장비 수급선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상무부가 중국을 첨단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조치를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연합뉴스
미국 상무부가 중국을 첨단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조치를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연합뉴스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확대?

한국의 주력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중국 업계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 41.1%, SK하이닉스 34.4%로 두 기업의 합산 점유율은 75%에 육박한다. 3위는 미국의 마이크론(22.2%)으로 후발 주자의 영향력이 아직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는 점은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CXMT가 DDR5 대량생산에 본격 나선다면 중국 내 AI 서버와 PC 시장부터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DDR4 제품을 주로 생산하던 중국 업체가 작년 연말 제품을 내놓으면서 DDR5로 시장을 장악한 한국 기업과 경합도가 높아질 수 있다.

실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펴낸 '10대 수출 품목의 글로벌 경쟁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1∼3분기 기준 한중 수출 경합도는 38.5로 2019년(38.0)보다 높아졌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중국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메모리 중심의 육성 정책으로 2024년 한중 반도체 수출 경합도는 주요국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72.2로 조사됐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직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술 수준이 한국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저사양 제품을 제외하면 당장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협력 대상국이자 반도체 분야에서는 가파른 추격을 시도하는 경쟁자"라며 "중국이 초점을 맞추는 기술 분야에 대한 추적 관찰이 필요하며, 한국 역시 상류 산업 주권을 지키기 위한 연구개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