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초유의 '野 단독 감액 예산안'…대왕고래 98% 삭감 좌초 위기

입력 2024-12-10 19:05:07 수정 2024-12-10 20:29:55

4조1천억 깎인 673조3천억 처리…505억원 중 고작 8억원만 살아남아
석유公 500억 추가 마련해야 "산유국 꿈 해치는 만행" 비판
돌봄수당 등 민생 예산도 칼질

지난 9일 오전 부산 남외항에 동해심해 가스전 유망구조에 석유·가스가 묻혀 있는지를 확인할 시추선
지난 9일 오전 부산 남외항에 동해심해 가스전 유망구조에 석유·가스가 묻혀 있는지를 확인할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가 입항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웨스트 카펠라호는 보급기지인 부산신항으로부터 7∼8일간 시추에 필요한 자재들을 선적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5년도 예산안을 표결하는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5년도 예산안을 표결하는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사상 초유의 '야당 단독 처리 감액 예산안'이 현실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4조1천억원 감액 예산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비롯한 정부 주요 사업이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이 민생 예산을 볼모로 두고 정쟁에만 몰두해 정부안에서 단 한 푼의 증액도 없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어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0일 정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과의 예산안 협상이 최종 결렬된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통과된 예산안에 따르면 총수입은 651조8천억원에서 651조6천억원으로 조정됐으며 총지출은 정부안 677조4천억원 중 4조1천억원 감액됐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수정을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가운데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동해 심해 가스전(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은 무려 98%가량이 삭감됐다. 505억원 중 고작 8억원만 살아남아 사업 추진에 큰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는 포항 영일만 앞 심해에서 국가예산 506억원, 석유공사 500억원을 투입해 1차 시추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1공 시추에 약 1천억원가량이 투입될 전망이지만, 야당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자본 잠식상태인 석유공사가 5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포항 남구울릉)은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 497억원 전액 삭감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라며 "'산유국 대한민국'이라는 꿈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은 포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에너지 자립의 초석이자 2천조원 경제적 가치를 가진 영일만 자원의 잠재력이 날아가게 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앞서 박성택 산업부 1차관도 지난 3일 민주당의 국회 예결위 단독 처리 이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2000년부터 모든 정부에서 유전 개발 출자를 지원해 왔음에도 예산 전액 삭감으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볼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외에도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82억5천100만원), 검찰 특정업무경비(506억9천100만원)와 특활비(80억900만원), 감사원 특경비(45억원)와 특활비(15억원), 경찰 특활비(31억6천만원) 등도 전액 삭감됐다.

산업·민생 분야와 관련해선 혁신성장펀드(2천억원)와 원전산업성장펀드 예산안(400억원)은 각각 238억원, 50억원이 감액됐다. 정부 역점 사업인 군 장병 인건비는 645억원, 돌봄수당은 384억원, 청년도약계좌는 각각 280억원 깎였다. 전공의 지원 예산도 931억원 감액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감액한 예산은 청년도약계좌 지원, 대학생 근로장학금, 산업 지원을 위한 산업은행 출자, 원전산업 성장펀드 출자금, 동해 심해가스전 개발 예산 등 민생·경제·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정부기능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다시 여·야·정 예산 협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민생안정과 대외 불확실성 대응을 위해 예산 집행 준비에 만전을 다하고 회계연도가 개시되면 최대한 신속히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