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성찰하는 과정서 허무나 두려움 아니라는 것 일깨워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충실한 하루하루 살아가야
우리는 모두 태어나고 죽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과의 헤어짐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내가 숨 쉬며 살아가던 시간과 공간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함께 해줄 수 없고 다시는 되돌아올 수도 없기에 죽음은 무척 외롭고 두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성찰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 죽음을 넘어 삶을 배우다
이어령 선생(1933~2022)은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선생의 이름을 검색하면 '국문학자,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육자, 사회기관단체인, 관료이자 정치인'이라는 소개 글이 나옵니다. 국립국어원을 세워 우리말로 문화를 창조하는 일의 바탕을 세웠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워 특별한 예술적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한 인물.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굴리는 소년도 선생의 아이디어라고 하지요.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지식과 실천으로 우리 문화사에 기여한 이어령 선생은 2019년 췌장암과 함께 죽음을 곁에 두게 됩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은 깊이 있는 인물 인터뷰로 잘 알려진 김지수 기자가 병석의 이어령 선생을 1년여에 걸쳐 16번 인터뷰한 내용을 갈무리한 책입니다.
항암치료나 진통제를 거부하고 그저 여느 날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말을 하기를 선택한 선생에게 죽음이란 삶이 시작된 곳을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에 가자' 하는 엄마의 부름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담담히 죽음과 마주한 선생은 자신의 삶이 선물이었음을 고백하며 그간 쌓은 자신의 지혜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인터뷰에 응합니다.
작가는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날의 풍경, 선생의 표정과 말투 등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선생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인문학뿐만 아니라 생명, 죽음, 사랑, 믿음 등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선생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는 모든 세대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또한 자신의 삶과 죽음을 차분하게 성찰하고, 죽음이 허무나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는 선생의 가르침은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선 우리의 마음까지 담대하게 합니다.
◆ 후회하지 않을 단 한번의 기회
근래 많은 콘텐츠들의 소재는 바로 회귀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한 번의 삶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죽은 뒤 내가 기억하는 삶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회귀에 대한 열망을 낳습니다.
'작별의 건너편'(시미즈 하루키 지음)에서 죽은 사람들은 24시간 동안 누군가를 만날 기회를 갖습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으며 아직 자신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 말입니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는 4살짜리 아이를 두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엄마 아야코의 이야기입니다. 강아지를 구하다 죽게 된 아야코가 간절하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들 유타입니다. 하지만 유타가 이미 엄마의 죽음을 안다면 단 한 번의 기회는 물거품이 되기에 아야코는 쉽게 결정하지 못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아야코는 유타를 찾아갑니다. 엄마가 없는 일상 속에서 마냥 어리고 불안하게만 보였던 유타는 생각보다 의젓하고 기특합니다. 그런 유타의 모습에 안도하며 아야코는 잠든 유타의 곁에 마지막으로 누워봅니다. 아이가 깨면 사라질 것을 각오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유타가 눈을 떠서 '엄마'라고 불러도 아야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유타는 강아지를 구해낸 엄마가 히어로가 되어 먼 별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야코는 홀로 남겨두어 미안하다는 말 대신 아이를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총 3권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별개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서로 연결된 주인공들의 사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사연은 책장을 넘길수록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항상 곁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언제든 화해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운하게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면 어떨까요? 죽음 너머의 세계인 '작별의 건너편'이라는 시공간에서 인물들은 마지막 재회를 통해 후회와 미련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평온과 감사에 이르게 되지요.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미루지 않을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순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온 마음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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