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안먹는 한국, 육류 소비량은 느는데 쌀 소비량은 하락, 생산량은 초과
공공 매입 제도, 식량안보 및 농가 소득 보전 꼭 필요하지만 재정 부담 한계 달해
쌀은 식량 주권을 위한 중요한 자원이다. 농민과 우리 쌀 보호를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쌀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반면 양곡 정책과 시장구조, 품질은 제자리걸음이다.
갈수록 쌀 소비량은 떨어지는데 기계화된 생산 구조는 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로 인해 쌀 품질 경쟁력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초과 생산 쌀을 정부가 매입하면서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고령화 문제까지 겹치면서 쌀 재배 기반이 허물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남아도는 쌀…수요감소와 초과 생산
22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서구 한 대형마트 입구. 채소‧과일과 떨어진 한 쪽에 쌀 판매대가 있었다. 한창 햅쌀이 나올 시기인데도 쌀을 사려는 손님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판매 직원이 손님에게 햅쌀을 권했지만 석 달 전 사둔 10㎏ 쌀도 아직 다 먹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 직원은 "대부분 5, 10㎏ 쌀이지 대용량은 잘 팔리지 않는다. 2인 가구가 5㎏ 쌀을 한 달 넘게 먹는다. 자취하는 사람들은 밥솥 없이 즉석밥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대구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쌀 판매율은 큰 변동이 없었고, 올해는 4% 정도 감소했다. 식료품 50여 종 중 매출 규모로 쌀은 22위 정도로 비중이 적다. 우유나 돼지고기, 스낵 등 가공식품들이 상위권"이라고 설명했다.
대구 수성구의 김선우(가명‧47) 씨의 세 가족은 요즘 쌀 20kg 한 포대를 소화하는 데 50~60일이 걸린다. 이는 5년 전 대략 40일 만에 먹던 것보다 느려진 것이다. 김 씨는 "최근 들어 배달 앱을 통해 면 요리와 육류 등 쌀 이외에 다양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며 "아침을 빵이나 선식 등으로 가볍게 해결하고 저녁도 외식이나 간편한 음식을 선호하게 됐다. 밥 이외에도 배를 채울 음식이 너무 다양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쌀 소비량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56.4㎏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쌀 소비량이 가장 많았던 1970년 136.4㎏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수치다. 1998년(99.2㎏) 100㎏ 아래로 떨어진 이후 줄곧 감소세를 이어왔다.
이는 식문화의 서구화, 외식·가공식품과 육류 소비의 증가 등의 요인에서 비롯된다. 세 끼를 먹던 식습관에서 아침을 거르거나 저녁을 간편식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달라진 가운데 쌀보다 면류나 빵, 육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3대(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육류 소비량 추정치는 60.6㎏으로, 같은 해 쌀 소비량(56.4㎏)을 웃돈다.
반면 생산량은 여전히 수요보다 넘쳐난다. 10년 단위로 보면, 특히 1990~2000년 사이 쌀 생산량이 5.7% 줄어든 가운데 소비량은 21.7%나 감소했다. 이후에도 2000~2010년과 2010~2020년 사이 쌀 소비량 감소율은 20~22%로 생산량 감소 폭(18%)보다 가팔랐다.
최근 농업은 90% 이상이 기계화돼 매년 일정량 이상의 생산이 유지하지만 쌀 소비는 감소하고 있어 남아도는 쌀을 사들이는 데 재정부담은 늘고 있다.
이에 정부는 1인당 쌀 소비량을 60㎏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재배면적 축소와 가공식품 활성, 다른 작물 재배유도 등 생산량을 조절해나갈 방침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줄었다. 쌀 가공식품 개발과 전통주 쌀 제조 조세감면 등을 통한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공공 매입 제도의 명암
국가는 양곡관리법에 따라 생산 초과분 쌀을 매입한다. 국내 쌀 시장 안정과 농가 소득 보전, 식량 안보를 위해서다. 정부의 공공 매입에는 자연재해와 전시 등 비상 상황, 식량 위기 등에 대비한 '공공비축미곡'과 쌀값 안정을 위해 그해 초과 생산분을 사들여 일정 기간 시장에 내놓지 않는 '시장격리곡' 등이 있다.
이 같은 쌀 공공 매입에 들이는 예산은 매년 늘어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예상 초과 생산량은 12만8천t보다 더 많은 20만t을 시장격리곡으로 사들였다. 또한 공공비축미곡 중간정산금(포대/40㎏당)도 기존 3만원에서 4만원으로 올렸다. 이와 함께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 유통업체에 벼 매입자금을 지난해보다 1천억원을 늘려 3조5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대책에도 지난달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지 쌀값이 80㎏에 18만2천9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산물벼(논에서 바로 수확한 상태의 벼) 8만t을 전량 인수하는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이를 통해 RPC가 민간 보유 벼를 추가로 매입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재정부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공공 매입 등 양곡 관리 적자분을 메우는 일반회계 전입금은 1조7천7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1조1천802억원보다 50%가량 늘어난 수치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공공 매입 비용은 2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도 쌀 생산량이 또다시 수요량을 초과하면 가격 안정을 위한 매입 비용까지 추가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쌀 농가의 소득 안정성이 보장되고 자급률을 유지하는 식량 안보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수급 조절 기능 약화로 초과 생산량의 발생과 재정 소요액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정부의 초과 생산분 의무매입이 이어지면 벼 재배면적 감소 폭이 둔화하면서 수요를 웃도는 과잉생산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시장격리곡 매입을 의무화하면 연평균 초과 생산량이 2024년 38만3천t에서 2030년 64만t으로 67.4%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의무매입 예산은 61.2%가 늘어난 것으로 전망했다. 정작 원산지 쌀값(80㎏)은 현재보다 낮은 17~18만 원 수준으로 예상돼, 쌀값 하락을 막는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의무매입은 공급과잉을 심화하고 쌀값 하락을 막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재정부담을 키우고, 쌀 이외의 농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다른 곡물로의 재배 전환을 제약하는 문제가 있다"라는 입장이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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