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제이에스 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새벽의 헬스장에서 바라보는 가로수의 붉은 색 단풍이 무척이나 현란하고 아름답다. 살아오면서 보아온 많은 가을 단풍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해인사의 '소리길'에서 만난 단풍이다. 홍류동 계곡을 따라 대장경 테마파크부터 치인마을까지 만들어진 숲길로 약 7Km에 이르는 산책길이고, 울창한 천년 노송의 숲과 계곡 전체가 물들어 붉게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홍류동 계곡과 함께 만들어진 아름다운 길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 등 자연에서 울리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소리길이라 하였다. 햇빛이 단풍잎을 투과하여 나오는 그 아름다운 빛의 색깔을 보면서,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색상이라는 미술 전시회까지 하셨던 선배님의 감탄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웅장한 바위를 휘감아 도는 청아한 물길과 그 홍류동 계곡의 맑은 물에 떠 있던 붉은 단풍은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였고, 세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듯 하였다.
빛은 파장에 따라 무지개에서 볼 수 있듯이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으로 구분되고, 마치 12음계로 교향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내듯이, 온 세상의 자연을 7가지 빛깔이 조합되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러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있는데,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훨씬 짧아 높은 에너지로 인해 피부 손상이나 눈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외선이 있고,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훨씬 긴 가진 적외선과 통신과 레이더에 사용되는 마이크로파, 그리고 가장 긴 파장을 가진 라디오파는 주로 방송에 이용된다.
가시광선 중 가장 짧은 청색광(블루라이트)은 빛의 파장이 380~500nm 사이에 있는 빛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TV, LED 조명 등에서 방출되고, 청색광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눈의 피로, 시력 문제, 수면 방해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잠들기 한 시간 이내에 청색광에 노출된 경우에는 멜라토닌의 분비가 억제되어 숙면이 되지 않고, 잠들었을 때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원활하지 못하여 어린이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낮에 학습하였던 모든 지식이 해마에 저장되었다가 수면 중에 대뇌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지식을 강화하고 보완하게 되는데, 숙면을 하지 못하면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해마에 있던 단기기억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시간에 촉박하여 밤새 공부하고 시험장에 가서는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는 경우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데, 수면 중에 해마에서 대뇌로 이동하여 통합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적절하게 영상매체를 사용하도록 돕는 것은 시력 보호뿐만 아니라 건강한 수면 습관과 전반적인 눈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2세 전까지는 영상매체에 노출시키지 않은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과도하게 노출이 되는 경우에는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시각 추구가 늘어나면서 산만한 아이가 되기 쉽다. 그리고 6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하루 1시간 이하의 노출시간이 바람직하고, TV나 동영상을 볼 때에, 보호자가 함께 설명하거나 질문하는 상호작용을 하는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성인에서도 장시간 동영상에 노출되면, 시력저하, 눈의 피로, 두통이 발생할 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사용할 때 고개를 숙인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서 '거북목 증후군'이나 만성 근육통을 겪을 위험이 크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서 피로감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특히 소셜 미디어 콘텐츠나 부정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면 불안감이나 스트레스가 심화되고 현실 생활에서의 관계나 소통이 소홀해지면서 외로움과 고립감도 증가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생활 습관이 불규칙해지며 운동, 균형 잡힌 식사 등 건강한 일상 활동을 놓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제 우리는 어린이들이 단지 푸른빛에 머물지 않고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과 빛을 경험하며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햇빛 아래 물들어가는 단풍처럼, 자연 속에서 다양한 빛깔을 마주하고, 생명력 넘치는 소리와 색채 속에서 건강한 눈과 마음을 키워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바로 우리가 만들어주어야 할 진정한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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