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초산을 음료수로 착각한 시각장애인…건네받아 마신 이웃 사망

입력 2024-10-25 09:27:05 수정 2024-10-25 10:57:48

80대 시각장애인에 금고 4개월, 집유 1년
이웃과 이야기하던 중 비타민 음료 건네
빙초산을 비타민 음료로 착각, 치료받던 이웃은 사망

법원 관련 자료 이미지. 매일신문 DB
법원 관련 자료 이미지. 매일신문 DB

빙초산을 비타민 음료수로 착각하고 이웃에게 마시게 해 숨지게 한 시각장애인이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25일 울산지법 형사4단독 정인영 부장판사는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80대 A씨에게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시각장애 1급으로 지난해 9월 울산 자택 인근 평상에서 이웃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70대 B씨와 C씨의 목소리가 들리자 집에서 비타민 음료수를 꺼내 와 건넸다.

두 사람은 이를 받아 마셨지만 이들 중 C씨가 답답함을 호소하면서 화장실로 가 구토했다. 이를 지켜봤던 다른 이웃이 C씨가 마신 음료수병을 들고 근처 약국으로 찾아갔고,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는 약사의 답변을 들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C씨는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조사 결과 시각장애인인 A씨가 빙초산을 비타민 음료수로 착각해 C씨에게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시각장애인으로서 문자를 볼 수 없고 색깔을 구별할 수도 없으며 눈앞에 움직임이 없으면 사물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과실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시각장애인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음식물을 건넬 때 독극물은 아닌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시력이 나빠 구분할 수 없다면 주변 사람에게 음료수병이 맞는지 물어보고 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A씨가 B씨에게 건넨 비타민 음료수병은 매끈했지만 C씨에게 건넨 빙초산 병은 주름이 있어 A씨가 촉감으로라도 서로 다른 병인 것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내용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다만,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받은 병의 내용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마신 점, 유족들과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나이 등을 참작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