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성심당의 선의와 그 적들

입력 2024-10-14 05:00:00 수정 2024-10-14 16:43:50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미쉐린가이드에 실리거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에 비견되긴 어렵겠지만 맵싸한 닭개장을 팔던 대구의 한 식당에는 암묵(暗默)적 규칙이 있었다. 손님은 업주가 정해 주는 자리에 앉아야 했다. 2명이 가면 생면부지의 다른 2명과 함께 4인석에 앉아야 했다. 닭개장 국물이 혀에 녹아드는 쾌감을 떠올리면 감내(堪耐)할 만한 규칙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가면 됐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특이한 영업 방식은 손님들의 입길에 오래 오르내렸다.

'대전의 명물'로 불리는 빵 가게 성심당이 주인장 마음대로 정해 놓은 규칙에는 '예비맘 할인'이라는 게 있다. 임신부에게 5% 가격 할인과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는 혜택 등을 주는 것이다. 오랜 시간 서 있는 게 힘겨운 임신부에 대한 배려이자 공동체 의식이 녹아든 방침으로 풀이된다. 영향력 있는 기업이나 유명인이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권장할 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역차별 논란이 일었다. 기혼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게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상대적 약자인 미혼·비혼 여성은 혜택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임신부가 벼슬이냐"는 둥, "환자, 어린이, 노인, 장애인에게도 혜택을 주라"는 둥 날이 선 표현들에 불쾌감부터 커진 건 인지상정이다.

제 발로 빵을 사 먹으러 갔다면 그곳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규칙 준수는커녕 불만 사항으로 점 찍어 불매(不買) 운운하는 막말도 보였다. '프로불편러(Pro+不便+er)'가 따로 없다. 임신부 배려에 불편감을 호소한 이들이라면 어린이·노인·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했을지도, 진심인지도 의심스럽다. '철딱서니 없는 투정'을 '각박해진 인심'이라 싸잡아 비판하기에 면구스러울 정도다.

올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명이 안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유 부릴 수준이 아니다. 수정란 착상을 인지하면 곧장 임신 2개월이니 성심당이 베푼 특혜도 길어야 7~8개월이다. 이걸 강퍅(剛愎)하게 구는 건 인성 문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주의·주장으로 포장된 이기심으로 선악 구분을 시도한다. 임신부 특혜가 불공평하다는 '아무말대잔치'는 강짜를 부리는 걸로 비칠 뿐이다. '예비맘 할인'이 싫으면 성심당을 가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