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에스 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대 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외래 진료실에 아주 건장한 대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잘 기억을 하지 못해 난처해하자 어머니가 사정을 설명하였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40여년간 어린 환자를 진료하였지만 진료실에서 갑자기 큰 절을 하여 정말 당혹스럽게 하였던 유일한 어머니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에 뇌전증으로 진단되었다가 완쾌되어 지금은 서울의 유수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군 입대 문제로 상의하고 싶어 정년퇴임 후 개원한 병원을 수소문하여 찾아왔다고 하였다.
과거에 간질로 불렸던 뇌전증은 발병하는 시기와 병의 경과 및 예후에 따라 증후군으로 분류되는데, 초등학생에게 가장 흔한 양성 로랜딕 발작은 아이의 발달과 지능도 정상이면서 주로 밤에 경련을 하는 아주 예후가 비교적 좋은 질환이다.
하지만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못하거나, 수면이 부족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와 피곤함이 있으면 경련이 재발하게 된다. 이 아이는 약물을 정확히 복용하는데도 불구하고 경련이 지속되어 이상하게 생각되어 아이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축구를 유난히 좋아하였던 그 아이는 축구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새벽에 유럽의 프레미어 리그, 분데스리그의 경기를 보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 당시에는 한일월드컵 4강 신화가 쓰여졌던 시기로, 우리나라의 많은 선수들이 활약을 하였는데, 수많은 명장면 중의 백미는 박지성선수가 포르투갈과의 경기 후반 25분에서 가슴으로 볼을 트래핑한 후 왼발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한 장면이었다. 이 골 덕분에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 4강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그 환아에게 박지성 선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좋아한다고 하였다.
박지성 선수가 축구 공을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축구공이 올 만한 장소에 미리 있는 것 같다고 하니까 아이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여, 나는 그것이 공간 지능이라고 설명하였다. 박지성 선수가 신뢰할 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다른 선수들이 공을 패스해주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대답하여, 그게 인간 친화지능이라고 설명하였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할 때에 히딩크 감독과 다른 선수들에게 공(公)을 돌리고 감사하면서 자기는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고 겸손히 이야기하는 것은 한 언어지능이라고 설명하면서, 축구를 잘 하기 위하여 운동지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할 때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 한달 후에 어머니가 다시 진료실에 왔을 때, 아이가 완전히 변하여 감사하다고 인사하였는데, 좋은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면서 밤에 TV를 보는 것도 끊고, 잠도 잘 자고, 스마트폰의 빛 자극도 피하면서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하여서 경련이 완벽하게 조절되었고, 학교생활을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
뇌전증의 치료를 위해 많은 약물들이 개발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주신경 자극법, 뇌전증 수술 등이 있고, 약물치료에 의해서 조절되는 경우가 70%이상으로 가장 중요한 치료이지만, 그에 앞서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마음 훈련이 필요하다.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다중지능이론을 제시하였는데 인간에게는 최소한 9가지의 지능이 있는데,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음악지능, 인간친화지능, 개인내적지능, 자연친화지능, 실존지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동안 학교 교육은 언어적 능력 또는 논리 수학적 능력을 중시하면서, 이 두 가지 능력을 기르는데 관심을 두었지만, 이제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있는 지능의 장점을 개발하고 특히 인성과 관련된 지능을 함께 개발해 주는 게 아주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잘해주고 싶고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앞선 마음과는 달리 골고루 균형 잡힌 식사와 가정의 따뜻한 보금자리의 역할과 평온한 잠과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 성숙의 기본이 된다. 운동이든지 건강문제이든지 아이의 성장의 문제이든지,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제이에스 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대 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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