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도 용역도 엉성…서구 와룡산 산림휴양단지, 졸속 추진 됐나

입력 2024-09-03 16:00:24 수정 2024-09-03 21:52:25

사업 뼈대 만드는 '기본계획수립' 졸속 추진 정황
서구청 과업지시서에 '의정부시' 4번…베끼고 검수도 안 해
기본계획서엔 비과학적 속설 '음이온‧피톤치드'
서구청 "사업 정상적 절차 따라 진행돼"

서구청이 지난 2022년 11월 와룡산 산림휴양단지 조성 주민설명회에서 공개한 기본계획표. 서구청 제공
서구청이 지난 2022년 11월 와룡산 산림휴양단지 조성 주민설명회에서 공개한 기본계획표. 서구청 제공

서구 와룡산 산림휴양단지 조성 사업이 이른바 밑그림 작업인 '기본계획수립' 과정부터 졸속 추진된 정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났다. 서구청은 타 지자체 과업지시서를 그대로 베껴 기본계획수립 용역업체에 건넸고, 업체는 비과학적 속설을 근거로 계획을 수립하는 등 논란을 자초한 모양새다.

서구청은 사업 추진 초기인 지난 2022년 7월,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맡은 A업체에게 과업지시서를 넘겼다. 이후 서구청과 A업체가 남긴 문건들을 살펴보면 사업 추진의 신뢰성과 전문성이 의심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먼저 서구청은 타 지자체의 과업지시서를 베끼고선 제대로 검수하지 않았다. 당시 서구청은 경기 의정부시가 지난 2021년 6월 나라장터 홈페이지에 게시한 총 15쪽 분량의 문서를 그대로 가져온 다음, 표지와 개요 부분만 갈아 끼웠다. 다음 페이지부터는 원본에 6번 등장하는 '의정부시'가 서구청 문서에서도 4번 발견됐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백억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계획하면서도, 형식적인 계획 설정‧관리 감독마저 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다른 문서를 베낀 다음 정독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기본계획수립용역의 신뢰성‧전문성 또한 담보할 수 없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용역을 맡은 A업체가 지난 2020년 말 대구환경청에 의해 6개월 영업정지·과태료의 중징계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이와관련해 한 지자체 사업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환경영향평가와 본 용역의 수행 요건에는 차이가 있다"면서도 "인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데 지자체 입장에서 굳이 그런 특정 업체에게 용역을 줘서 불확실성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용역 업체가 지난 2022년 11월 주민설명회 당시 배부한 보고서도 논란 거리다. 비과학적 속설에 기반한 시설계획이 버젓이 실렸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 업체는 음이온과 피톤치드를 '산림치유인자'로 지칭하며 산림휴양단지 내부에 '피톤치드욕장'과 '황토에코로드(음이온)'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의학계에선 피톤치드와 음이온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고 반박한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산림욕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널리 입증된 것이지만, 이는 피톤치드나 음이온의 영향이라 보기 어렵다. 이들의 효능을 보증하는 연구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