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반년 앞으로 <중>] 대입제도와 미스매치·교사 수급 문제…고교학점제 안착 '산 넘어 산'

입력 2024-08-28 17:46:56 수정 2024-08-28 19:56:54

교육계 "고교학점제 취지 무색하게 하는 새 대입제도" 지적
다과목 지도, 평가 업무 증가로 교사 부담…수업 질 저하 우려
큰 틀 외에 세부적인 지침 없어…"당장 내년인데 현장은 혼란"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현풍고에서 학생들이 수강 신청 전 과목 선택을 실습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현풍고에서 학생들이 수강 신청 전 과목 선택을 실습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정부는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 앞서 2021년 8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 계획'을 발표하고 ▷2020년 마이스터고 ▷2022년 특성화고 ▷2023년 전체 일반계고 및 특목고로 확대해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대구 지역에서도 2018년 9곳으로 시작해 올해 92곳의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및 준비학교를 운영하며 제도의 체계적인 안착을 위해 준비해 왔다. 하지만 고교학점제 도입을 반년 앞두고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들이 있어 제도의 애초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우려도 나온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함지고에서 고교학점제 관련 교육과정 박람회를 실시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함지고에서 고교학점제 관련 교육과정 박람회를 실시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고교학점제 역행하는 새 대입제도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2028 대입 개편안'을 발표했다. 고교학점제를 적용받는 현 중3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입을 위해 '수능'과 '고교 내신'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개편안에는 수능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를 없애기 위한 '통합형 수능' 도입, 내신 평가 '9등급→5등급제' 축소 개편 및 상대·절대평가 병기(倂記)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를 놓고 교육계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대입제도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통합형 수능'이 되면 문·이과 구분 없이 수능에서 국·영·수, 통합사회·과학 등을 공통으로 치르게 된다. 고교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과목 선택권을 확대한다고 해놓고 수능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과목을 치르는 것이다. 정시 확대 기조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만큼 학생들은 수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자신의 흥미보다는 수능에 도움이 되는 과목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3년간 고교학점제 준비학교를 운영한 정영헌 경상고 교사는 "학생들이 교과 간 경계 없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수능 위주의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며 "수능이 코 앞에 있는 고3들의 경우 수능과 관련 없는 수업 시간에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내신에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병기하는 형식도 고교학점제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당초 정부는 2~3학년 때 배우는 선택과목의 경우 고교학점제 취지에 맞춰 절대평가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절대평가는 '성적 부풀리기', '내신 성적에 대한 불신' 등으로 내신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지난해 말 갑자기 상대평가 병기로 방식을 변경했다.

성적별로 줄 세우는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아무리 듣고 싶은 과목이더라도 수강인원이 적거나 상위권이 많이 듣는 과목은 높은 등급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의 기피 대상 일 수 밖에 없다.

대구 지역 한 고교에 재학 중인 김모(18) 양은 "학생 수가 적은 과목은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확 떨어진다"며 "내신 성적을 고려하면 싫더라도 인원이 많은 과목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이 되기 위해서는 대입제도가 전면 개편돼야 한다"며 "대입제도와 교육정책이 분리된 상태로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 양성을 육성한다는 고교학점제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지난 14일 대구중앙컨벤션센터에서 학교장을 대상으로
대구시교육청은 지난 14일 대구중앙컨벤션센터에서 학교장을 대상으로 '2025학년도 일반계고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실제 및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따른 학교의 변화'를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다과목·업무 증가로 교사 부담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과목이 세분화되고 다양해질 뿐 아니라, 모든 과목이 학기제로 운영되면서 교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과목의 수도 덩달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는 교사가 더 많은 학년, 수업을 지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사 한 명이 공통과목과 선택과목 2~3개를 맡아 수업하고 평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까지 하다 보니 업무 가중에다 수업의 질 저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 내신 5등급제가 도입되면 1등급 비율이 4%에서 10%로 늘어나 내신 변별력은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학생부에 기재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이나 비교과 활동 중요도가 커지고 교사들은 이전보다 학생부를 더 신경 써서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진이 2020년 발표한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수급 관련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고교학점제의 이상적 정착을 위해서는 8만8천106명의 교사가 더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교원 단체들은 안정적인 고교학점제 정착을 위해 장기적인 교사 수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원 감축을 추진 중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4월 2027년까지 초·중·고교 신규교원 선발규모를 20~30%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장기(2024~2027년) 초·중등 교과 교원 수급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4월 2025학년도부터 교대 입학 정원을 12% 감축하는 '교육대학 정원 정기 승인 계획안'도 발표했다.

김도형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현재는 학생부 마감을 연말에 한번만 하면 되지만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학기제에 따라 1, 2학기로 나눠 두 번 마감해야 한다. 자연히 교사 업무도 두 배로 늘어난다"며 "학생부 작성은 대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이라 교사들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안정적인 교사 수급 대책 없이 기간제 교사나 강사를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데 이는 임시방편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세부적인 지침 없어 현장은 혼란

고교학점제 체제에서 해당 과목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3분의 2 이상 출석하고 학업성취율이 40% 이상이 돼야 한다. 학생들은 교과 174학점과 창의적 체험활동 18학점(288시간)을 포함해 최소 192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정부는 학생들이 과목 이수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기 위해 학기 중에 예방지도를 하고, 그럼에도 이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방과 후나 방학 중 보충지도를 진행해 학생들이 최소 성취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예방·보충지도를 위해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학생의 의지 부족 등으로 미이수할 경우 해당 학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졸업 학점에 미달할 경우 졸업을 유예시킬 것인지 등 명확한 지침 수립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교과 과목 외에 18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창의적 체험활동도 이수 기준(3분의 2 이상 출석)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미이수에 대처할 뚜렷한 대안도 현재로선 부재한 상황이다.

대구시교육청 관계자는 "고교학점제의 전체적인 큰 틀은 발표됐지만 학교 현장에 직접 적용될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지침이 없다"며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아 학교 현장에서도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공강(空講)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관건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전체 수업량은 현재 204단위(총 2천890시간)에서 192학점(2천720시간)으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학생들마다 시간표별로 일주일에 1~3시간씩 공강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학생들이 공강 시간을 활용해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거나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 내 충분한 공간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 학생들이 공강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활동지도 및 안전사고 예방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