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대학 시절 나는 경제학 수업에서 노동조합을, 경영학 수업에서는 노사관계를 배웠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과 노동의 법칙을 다뤘다. 그러나 어떤 교수도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무노조(無勞組) 경영'은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에 맞지 않았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 문제에 침묵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말하는 것은 금기(禁忌)였다. 삼성의 논리는 이랬다. 노동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罷業)한다.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이다. 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그들을 최고로 대우한다. 그러니 노동조합이 필요치 않다. 이 논리의 바탕에는 이른바 '온정주의'(溫情主義)가 깔려 있다.
'온정주의'는 부모가 자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부모는 무엇이 자식에게 이로운지 알지만, 자식은 무엇이 자기에게 이로운지 모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국가는 정부가 부모, 국민이 자식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온정주의'다. 신이 부모, 인간은 자식이다. 신은 자비롭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
따라서 인간은 신의 뜻을 따를 때 행복해진다.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는 제한된다. 문제는 자유다. 부모의 간섭은 선하나, 자식은 이익과 자유가 충돌한다. 자식은 자유를 원하기 마련이다. 배부른 노예보다 배고픈 자유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는 '온정주의'가 아니다. 기업이 부모, 노동자가 자식일 수 없다. 노동조합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업은 유능하지 않다. 기업이 악은 아니지만 선할 이유도 없다. 이 점에서는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산업화의 핵심은 공장(工場)이다. 공장은 자본이 집적(集積)되고 노동자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모여서 작업해야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뭉친다. 노동조합이 생긴다. 기업이 성장하면 노동조합도 커진다. 대량 생산과 노동조합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지속된 것이 이례적(異例的)이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있다. 삼성이 체계적으로 노무(勞務) 관리를 한다는 의미다. 노무 관리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상은 당근이고 벌은 채찍이다. 일을 잘하는 노동자는 보너스를 받고 빨리 승진한다. 일을 못하는 직원은 늦게 승진하거나 해고된다. 이런 농담도 있다. 교수를 그만둘까 고민할 때마다 방학이 되어서 대학에 남게 되고, 일이 힘들어 사표를 내려고 할 때쯤이면 성과급이 나와서 삼성을 그만두지 못한다.
'관리의 삼성'이기에 '무노조 경영'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어느덧 관리의 시대가 지났다. '무노조 경영'은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가능했다. 아들 세대에는 불가능하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이익보다 자유가 먼저인 시대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이 25일 동안 파업했다. 주된 파업 원인은 성과급이다. 작년에는 지급되지 않았고 올해 상반기는 금액이 적었다. 파업 기간에 조합원이 약 6천 명 증가했으나 파업 참여율은 낮았다. 첫날 6천500명이 참여했으나 마지막 날 참여자는 15명에 불과했다.
전삼노에는 고액 연봉자가 많다. 이들은 파업 참여에 따르는 금전적 손실이 크다. 더구나 파업으로 얻는 것은 불확실하지만 잃는 것은 확실하다. 전삼노 파업은 오히려 삼성에 잘된 일이다. '무노조 경영'은 삼성의 위험 요인이었다. 이제 그 위험이 사라졌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합리적이다. 무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쇠사슬 외에도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가 그 증거다. 현대자동차 노사 협상이 6년째 분규 없이 타결됐다. 기본급이 4.6% 인상됐다. 경영성과급, 경영실적 달성 기념 격려금, 품질 향상 격려금도 지급된다고 한다. 줄 만큼 줬고, 받을 만큼 받았다. 전삼노 노동자들도 잃을 것이 많다. 그래서 이들도 합리적이다. 무모(無謀)하지 않다. 무엇이든 삼성이 하면 다르다고 한다. 노동조합 관리(?)에 있어서도 삼성의 '일등주의'(一等主義)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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