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대구 도시 브랜드 수난사

입력 2024-08-06 13:01:10 수정 2024-08-06 15:41:10

권은태 (사)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권은태 (사) 대구문화콘텐츠플랫폼 대표

대구는 '능금(사과)의 도시'였다. 요즘에야 낯설게 들릴지 모르나 꽤 오랫동안 그랬다. 도시 브랜드란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대구의 대표적 산물(産物) 사과는 대구를 상징하는 '그 무엇'이었다.

물론 오래전 이야기다. 그땐 대구와 서울이 지금처럼 차이 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중심, 대구도 그 나름 알아주는 도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눈떠 보니 서울이 저 멀리 높은 곳에 있었다. 그즈음부터였지 싶다. 뜬금없게도 서울 사람들이 서울 아닌 모든 곳을 '시골'이라 통칭했다. 대구 간다고 하면 "시골 가는구나"라고 했고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너희 집 과수원 하니?"라고 물었다.

어쨌든 서울이 그토록 우월해지는 동안 다른 도시들은 자꾸 뒤로 밀렸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디지털 시대, 뭐든 쉽고 빠르게 비교되는 세상에서 도시도 기업처럼 브랜드의 중요성이 커졌다. 잘나가는 도시, 뭐든 1등이라는 '그 무엇'을 이미 확보한 서울은 더 유리해졌다. 대신 다른 도시들은 더 사그라들었다. 대구도 마찬가지였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선 도시의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했다. 그게 곧 경쟁력이었고 그렇다 보니 메트로시티 브랜드로 '사과의 도시'는 아무래도 약해 보였다. 그때 나온 것이 '섬유패션 도시 대구'였다. 대구시의 심벌마크와 로고 타입도 개발하고 곧이어 캐릭터 '패션이'도 만들었다.

그리고 2004년엔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를 대구의 브랜드 슬로건으로 지정했다. 사실, 캐릭터만 빼면 다 괜찮았다. 기본이 튼튼한 심벌과 로고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손색이 없다. '컬러풀 대구'도 빼어났다. 대구의 다양성과 새로움을 보여준 디자인은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이 모두 대구 사람이었다는 것, 즉 '대구의 시민정신'과도 맥이 닿았다.

그런데 그게 정점이었다. 요란했던 밀라노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자 대구시는 '섬유패션 도시'를 버리다시피 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진 듯, 좋아 보이는 것과 유행하는 건 다 가져다 썼다. 그래서 한동안 대구는 녹색산업의 도시이자 6T 산업의 도시인 동시에 의료관광의 도시였다. 공연예술의 도시, 로봇 도시, 안경 도시이기도 했다.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었다.

민선 1기 때 정초한 대구의 도시 이미지 통일화 사업(CIP: City Identity Program)은 그로부터 줄곧 수난의 연속이었다. 헌법과도 같은 CIP 규정을 시청 공무원들이 서슴없이 어겼다. 이를테면 명함의 로고와 심벌마크를 내키는 대로 조합해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건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태극기의 모양을 제멋대로 붙이고 나가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브랜드의 기본을 스스로 무너뜨리더니 급기야 2015년 출범한 도시브랜드위원회가 'Colorful Daegu'마저 'C'와 'lorful Daegu'로 두 동강 냈다. 무려, 브랜드 개발인데 '시민들의 모임'이라니? 그건 시민들이 모여 인공위성을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시, 민선 8기 들어서며 그마저도 아주 간단히 '파워풀 대구'로 바꿔 버렸다.

세계적인 브랜드 전략가 마티 뉴마이어는 "브랜드란 당신이 말하는 그 무엇이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그 무엇이다"라고 했다. CIP 규정을 함부로 무시하고 200만 시민을 대표하는 브랜드 슬로건을 자기소개 앞에 붙는 수식어쯤으로 여긴다면 대구 도시 브랜드의 수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도 그렇다. 찾아오는 손님들이야 어떻든 말든 커다랗게 동상을 세워 놓고 우리끼리 뿌듯해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그 무엇'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한다.

도시 브랜드는 이념과 관계없다. 그리고 자기 자랑도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도시 브랜드는 시민이 먹고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왜 광주시의 광장과 거리 그 어디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이 없는지, 왜 대구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과 복지의 기틀을 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수도인 서울 광장에 없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그 무엇', 대구의 도시 브랜드를 다시 궤도에 올리려면 슬로건을 만드는 것, 동상을 세우는 것, 모두 길게 보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200만 대구 시민보다 위대할 수는 없고 그 사람을 기념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시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앞설 수는 없다. 그건 '자유와 활력이 넘친다는 도시'가 할 일이 아니다.